Editorial Feature

조선과 대한제국에 대해 몰랐던 것들

Professor Park, Gyeong-ji shares the stories and artifacts left behind by this fascinating period

조선시대 역사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먼지가 수북히 쌓인 유물들이나 고루하고 시대에 뒤 떨어진 문화를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견해 보면 그 생각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1. 헌종의 인장수집과 보소당인존장

무언가를 수집하는 ‘덕후'라면 그 수집품에 온갖 애정을 쏟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수납장을 특별히 주문 제작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물건이 국립고궁박물관에도 있습니다. 이 물건의 주인은 조선의 24번째 왕인 헌종(1827~1849)입니다. 8세에 왕위에 올라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헌종은 15년간 궁에서 왕으로 정사를 돌보며 살았습니다.

헌종은 서화와 전각 애호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글씨와 전각은 조선의 왕이 즐길 만한 고상한 취미이죠. 그러나 헌종의 ‘덕후’ 성향은 단순히 전각 몇 점을 보고 즐기는 정도를 넘어섰습니다. 헌종은 자신의 컬렉션에 ‘보소당’이라는 자신의 당호를 붙여 책(인보)으로 정리하고 전각 보관을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장에 컬렉션을 정리해 보관했습니다. 이 수량이 700여 점에 달합니다. 오늘날까지도 195점이나 남아 있습니다.

보소당인존장(국립고궁박물관)
보소당인존장(국립고궁박물관)

컬렉션을 정리하기 위해서 책에 실린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 서랍에 보관했습니다. 수정, 상아, 산호, 마노, 옥 등 아름다운 돌에 새겨진 명사의 글씨가 훼손될까 우려한 헌종의 정성이 장에 담겨 있습니다. 서랍이 아무렇게나 쏟아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턱을 만들고, 전각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사방에 완충재를 둘러, 서랍에 들어있는 인장의 번호를 차곡차곡 기록해 놓았습니다.

"쌍리" 석인(국립고궁박물관)

2. 커피에 곁들이는 달콤한 간식의 매력

한국 최초의 커피 애호가로 알려진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는 아마도 커피의 친구들에 대해서는 박애주의자였던 것 같습니다.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가 커피와 서양식 티타임을 접한 시기는 1895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는 대한제국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때 잠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른 것을 계기로 고종황제는 역사에 기록이 남을 정도의 커피 애호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커피와 더불어 다양한 서양 과자도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베이킹 몰드를 궁에 갖추어 놓게 되었습니다.

창덕궁에는 고종황제의 티타임에 진어되었던 양식 과자를 위한 조리도구들이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한두 종류가 아니었지요. 시폰케이크, 와플 등 달콤한 각양각색의 과자를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들이 황실 주방에 가득했습니다.

까눌레 틀(국립고궁박물관)
젤리 몰드(국립고궁박물관)
구겔호프 팬(국립고궁박물관)

최근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까눌레를 굽기 위한 틀입니다. 창덕궁의 까눌레 틀은 3cm정도의 앙증맞은 크기로, 커피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가벼운 간식으로 어울립니다. 타르트는 굽고 나서 쉽게 떼어낼 수 있도록 경첩과 고정핀이 달린 타르트 보트 형태의 틀을 이용해 구었습니다. 바닥이 없기 때문에 별도의 팬에 올려서 구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외 구겔 호프, 시폰 등 케이크를 굽기 위한 팬도 있었습니다.

버터, 설탕, 우유, 밀가루 따위의 재료는 오늘날에는 매우 흔한 것이 되었지만 20세기 초의 대한제국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흔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과자를 굽는 것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부드럽고 촉촉한 케이크에 들어가는 달걀과 설탕의 양에 놀랄 것입니다.

타르트 보트(국립고궁박물관)
와플 팬(국립고궁박물관)
시폰 팬(국립고궁박물관)

3. 궁궐 속 상상 속의 동물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은 없지만, 왕이 있는 모든 곳에 용이 있었습니다. 동양에서 용은 왕을 상징하는 동물이었고, 고궁은 왕이 머무르는 장소였으니 당연한 것이죠.

제례용 술을 담는 동이, 경복궁 근정전의 천정은 물론이고, 왕의 옷과 생활용품에도 용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궁궐 건물의 지붕 장식, 왕이 타는 가마의 손잡이, 장신구를 담아 두는 상자를 감싼 비단에도 용이 있었네요. 제례용 국자의 자루, 황제의 인장에도 용이 앉아 있습니다.

왕이 정사를 보는 집무실의 벼루에도, 왕비의 보물인 금비녀에도 용을 새겼습니다. 여러분도 국립고궁박물관과 조선왕조의 궁궐을 방문할 때는 숨어 있는 용을 찾아보세요!

운룡문 장신구 상자(국립고궁박물관)
종묘제사를 위한 세 세트(세뢰, 세이, 세작)(국립고궁박물관)
영친왕비 백옥쌍룡단작노리개(국립고궁박물관)

4. 조선시대의 인생 게임! 승경도놀이

조선시대에도 다양한 종류의 게임이 있었습니다. 바둑, 장기 같은 중국에서 기원한 게임도 있었고, 윷놀이처럼 아직도 한국의 대중들에게 널리 인기 있는 게임도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보드게임 중에 ‘승경도놀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종정도’ 등의 다른 이름으로도 불렸던 승경도놀이는 조선시대 관리의 인생을 게임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처음 관리가 되고 근무 실적과 기간에 따라 지위가 높아지거나 처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과거 시험에 급제해서 관리가 되는 것으로 게임이 시작됩니다. 승경도놀이는 다섯 모가 난 일종의 주사위인 승경도알을 던져 나오는 수에 따라 보드 위의 관직을 따라가면서 빨리 최고 관직인 영의정, 도원수에 도달하면 승리하는 게임이었습니다. 만약 승경도알이 없으면 흔한 육면체 주사위를 사용하고 6이 나왔을 때 다시 한 번 던지는 것으로 규칙을 정하면 됩니다. 이것과 비슷한 게임이 지금도 많이 있으니,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승경도놀이는 잘못하면 탄핵을 받아 파직되고, 사약을 받을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인생 보드게임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렇게 인생을 걸어 승경도알을 던졌습니다.그런데 승경도알을 천만 번 던져도 게이머는 왕이 될 수는 없지요.

1479년, 조선의 9번째 왕인 성종은 궁중에서 밤새 기다리게 된 관리들에게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니 승경도놀이라도 하며 시간을 보내라며 궁중의 재물을 내기의 판돈으로 내려 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승경도알(국립고궁박물관)

조선시대의 역사기록과 유물 뒷면에 숨겨진 사람들의 삶은 어쩌면 지금 우리의 생활과도 크게 동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조선의 왕 조차도 그렇습니다. 웅장한 궁궐과 권력을 나타내는 상징 속에 살았던 그들도 달콤한 간식이나 취미, 여가를 함께할 놀이 따위를 즐기고, 일상생활을 하는 한 명의 보통 사람이기도 했으니까요.

Words by 박경지
참여: 모든 표현 수단
이 스토리를 친구와 공유
Google 번역
찾아보기
주변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