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Feature

궁에 사는 동물들

Curator Heo, Kyun explores the animal figures and sculptures found in the palace complexes of the Joseon Dynasty

조선 시대 궁궐에는 많은 동물상들이 있다. 이들 동물상들은 각기 나름의 독특한 성격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의미는 크게 왕의 권위와 위엄, 상서의 징표, 법과 정의, 길상과 벽사, 우주 모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왕의 권위와 위엄

왕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이 용이다. 용은 동양 고대 전설상의 동물로, 봉황, 기린, 거북이와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이다. 궁궐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용 장식 중에서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경복궁 근정전, 덕수궁 중화전 등 정전(正殿) 천장 중앙의 용이다. 황룡 두 마리가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돼 있는데, 황색은 동양 전통의 오방색 가운데 중앙을 의미하는 색이고, 하늘을 나는 용은 성인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상징한다. 비룡(飛龍)이 왕의 즉위를 상징하게 된 것은 《주역》 건괘(乾卦) 효사(爻辭)에서 성인이 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물에 잠겨있던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에 비유한 것에 기인한다. 따라서 정전 천장 중앙에 장식된 황색 비룡은 세계의 중심에 군림하면서 만백성을 다스리는 왕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어좌 위쪽의 천판(天板)에서도 황색 비룡을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천장의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쌍룡각보개(雙龍刻寶蓋)(국립고궁박물관)

상서의 징표

성철(聖哲)한 왕이 나라를 잘 다스려 천하가 태평하면 하늘은 예사롭지 않은 천문 현상이나 신령한 동·식물들을 출현시켜 그를 칭찬하는데, 이것을 상서(祥瑞)라 한다. 상서에는 다섯 등급이 있다. 그중 최상의 상서에 속하는 것이 봉황의 출현이다. 봉황은 용·거북·기린과 함께 4종의 신령스러운 동물 중 하나로, 좁쌀 따위는 먹지 않고 대나무 열매를 먹으며, 오동나무에 둥지를 튼다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새다.

봉황 장식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창덕궁 인정전과 창경궁 명정전 천장의 봉황 장식이다. 한 쌍의 봉황이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오색구름 사이를 날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그 자태가 아름답고 신비롭기 그지없다.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등 정전의 답도(踏道:원래 신령에게 존경심을 표시하는 뜻으로 설치하는 계단석을 말함)와 경복궁 집옥재 툇마루 벽에도 봉황이 장식돼 있다. 이 장식들은 왕이 덕이 높고 지혜가 깊으며, 그가 다스리는 이 시대가 태평성대임을 상징하고 있다.

인정전 천정의 봉황문양(창덕궁관리소)
인정전 천정의 봉황문양(창덕궁관리소)
인정전 천정의 봉황문양(창덕궁관리소)

법과 정의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 좌우의 높은 대(臺) 위에 앉아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동물상이 해치(獬豸)상이다. 이 동물상은 조선 말기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 제작된 것이다. 해치는 전설상의 동물로, 높은 판단력과 예지력을 가지고 있어 언행만 봐도 그 사람의 성품과 됨됨이를 금방 알아차린다고 한다. 또한 사람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 능히 옳고 그름을 가려 이치에 어긋난 자를 뿔로 받아 응징한다고 한다. 광화문 해치상에는 법의 적용을 엄격히 하여 나라의 기풍을 마로 세우고, 치우침과 사사로움 없이 은택을 모든 백성들에게 고루 베풀어 태평성대를 이루려는 조선 왕의 정치철학과 이상이 담겨 있다.

광화문(국립고궁박물관)

길상과 벽사

궁궐에는 수명장수, 평안과 행복 등 길상적 의미를 가진 동물상들이 많다. 창덕궁 희정당·대조전, 경복궁 교태전 굴뚝에 새겨진 기린·코끼리·사슴·학, 그리고 궁궐 문과 기와에 새겨진 박쥐 등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경복궁 영제교 주변의 천록(天祿), 창경궁 옥천교 주변의 사자상과 귀면, 그리고 격이 높은 건물 지붕 위에서 볼 수 있는 용두와 잡상처럼 나쁜 귀신을 물리치는 기능을 하는 동물들도 있다.

청향각의 굴뚝 문양(창덕궁관리소)
청향각의 굴뚝 문양(창덕궁관리소)

지붕 위의 용두는 왕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정전 천장의 용과 달리 나쁜 귀신으로부터 건물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추녀 마루에 도열한 잡상은 도교 계통의 소설 《서유기》의 주인공들, 예컨대 손오공, 저팔개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모두 사악한 귀신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이 밖에도 궁궐 계단에는 그 연원이 불분명하지만 궁궐을 평안하고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조성한 동물상들이 많다.

지붕위의 용두(창덕궁관리소)

우주 모형

우주는 시간과 공간의 융합체다. 예컨대 계절 변화 등은 시간 개념이고, 천지사방은 공간 개념이다. 두 개념을 동시에 나타내는 것이 십이지(十二支)이고, 이것을 동물로써 나타낸 것이 십이지 동물상이다. 그러므로 경복궁 근정전 월대 난간의 쥐·토끼·뱀·말·양 등의 동물상은 곧 우주 모형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같은 월대의 동서남북 사방에 배치된 청룡·백호·주작·현무 등은 동서남북사방을 지키는 방위신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공간적 개념이다.

근정전 월대에는 십이지 동물로 상징되는 시간과 공간 세계가 전개돼 있고 사신상으로 상징되는 공간 세계가 펼쳐있다. 시간과 공간의 융합체가 우주이므로, 십이지상과 사신상이 배치된 월대는 바로 우주모형인 셈이다. 이처럼 우주모형을 정전 주변에 조성한 것은 우주 자연의 도(道)를 지상에 구현하여 그와 지위를 나란히 하려는 천인합일의 정신의 발로이다.

경복궁 근정전 월대 조각상

조선 궁궐을 거닐 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을 찾아보고 조선의 권위와 바람, 이상과 철학을 느껴보길 바란다.

Words by 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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