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강운에게 기억과 감정, 지식과 상상의 저장소이다. ‹밤으로부터›(2019)는 작가의 군 복무 시절 기억을 간직하는 자아(自我) 외에 또 다른 존재, 하늘이 그날을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다. 군대에서 본 1986년 DMZ의 하늘은 오늘의 하늘과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 시절의 하늘과 오늘의 하늘은 여전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의 하늘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변화를 거듭해 왔다. 미세하나 끊임없는 자연의 움직임처럼, 작가는 우리의 정신 또한 은연중에 인식의 변화를 거쳐 왔음을 ‹밤으로부터›를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군 복무 시절 대남 대북방송으로 혼이 빠진 채 마주했던 철책은 단순한 물리적 경계를 넘어 훨씬 더 초월적이고 정신적인 장벽이자 표상이었다. 30여 년 후 다시 마주한 이 철책은 더 이상 굳건한 장벽도 상처도 아닌 그저 지나간 시간의 녹슨 표상으로 늘어져 있다. 깊은 잔상으로 남은 고성의 아름다운 산하에 끝없이 이어진 이 막막하고, 또 먹먹한 철조망을 그려낸 ‹철책 단상›(2019)은 지나가 버린 청춘과 다가올 청춘들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