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이다. 가로로 7매를 이어 만든 삼베바탕에 전면을 주색朱色으로 칠하고 백선을 위주로 형상을 그렸다. 신체부는 황백색을 칠하고 입술은 주색, 머리카락은 군청색, 눈썹에는 녹청색을 칠해 각 존상을 존재감 있게 표현하였다. 이처럼 붉은 바탕에 선으로 형상을 그리는 조선 불화는 여러 점이 알려져 있는데시 주자에 따라 바탕천과 선묘에 사용되는 안료의 차이를 보인다. 즉 왕실 후원 불화인 경우 비단바탕에 금선, 은선으로 존상을 묘사하는데 반해 서민 시주자는 삼베 바탕에 금・은과 유사한 황선과 백선을 사용한다. 이를 반증하듯 화기에 박풍산朴風山과 현회玄會가 각각 시주자와 화주化主로 이름이 올라 있다. 화면 구성은 가운데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그 좌우측 아래로부터 사천왕상,범천・제석천, 팔대보살을 배치되었으며, 가장 위쪽에는 십대제자와 팔부중이 좌우대칭으로 서 있는 군집구도를 이루고 각 존상 사이는 뭉게구름으로 경계를 짓고 있다. 본존인 석가여래는 연판형 광배를 갖추고 중품하생인을 취해 불단佛壇 위에 가부좌하였고, 변형 편단우견식의 대의를 입었는데 백색선으로 묘사된 대의와 승각기의 필치가 강하며 문양이 빼곡히 그려졌다. 좌우 너비가 매우 넓게 그려진 중간계주의 표현이 눈에 띤다. 보살상, 천부상들도 본존불과 표현기법은 유사하다. 특이한 점은 이 불화 화기에 영산회, 즉 석가모니의 설법 장면을 재현한 불화라고 명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협시보살로 아미타팔대보살인 관음, 대세지, 문수, 보현, 금강장, 제장애, 미륵, 지장보살을 표현하였다는 점이다. 석가모니불에 아미타팔대보살이 결합된 형식으로는 현재 가장 이른 예로, 조선 후기에 제작된 같은 형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화면 하단 중앙의 화기畵記에는 가정嘉靖44년, 조선 명종 20년(1565) 영산회를 바탕시주한 박풍산朴風山을 비롯한 서민과 승려의 주도로 조성되었고, 화원은 탄원坦員 스님이라고 기록하였다. 국내에 남아있는 조선전기 불화가 서너 점에 불과한 가운데 제작된 연도와 화승을 알 수 있는 드문 사례이며, 조선전기 불화 중에 규모가 가장 크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또한 백색과 황색선을 사용한 선묘불화로는 현존 최고最古의 작품이고, 서민과 승려에 의해 제작된 그림으로 궁정관련 인물의 발원에 의해 제작된 작품과는 또 다른 화풍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당시의 불화 화풍의 다양성을 짐작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