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과거 시험에서 응시자가 제출하는 답안지를 시권(試券)이라고 한다. 이 시권은 조선 숙종대 학자인 오세추(吳世樞)가 35세 때 작성한 것이다. 조선의 과거 시험에는 글을 잘 짓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인 제술업(製述業)이 있었는데, 오세추는 이 답안지에 당시 국정의 현안과 이에 대한 생각을 글로 풀어 책문(策文)이라는 양식으로 썼다. 시권의 오른쪽에는 응시자의 신분, 성명, 나이, 본관, 거주지 그리고 사조[(四祖), 부 · 조 · 증조 · 외조]의 신분을 기재하였다. 시험장에서는 이 부분을 분리해서 따로 두었다가, 시험이 끝나면 끈으로 묶어서 보관하였다. 우측 상단에는 작은 글씨로 제시된 『중용(中庸)』의 한 구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라는 문제를 기록하였고, 그 문제에 따라서 과거 응시자는 자신의 답안을 썼다. 하단의 “三之十六”이라는 기록은 ‘3-16’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시험 친 날 오세추의 수험번호이다. 문서 중앙에 붉은 글씨로 ‘차하(次下)’라고 크게 쓴 것은 오세추의 시험 성적으로 네 등급 중에 세 번째 등급의 성적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