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城門)은 성을 드나드는 주출입구(主出入口)이다. 성문의 숫자나 위치는 성곽의 입지여건(立地與件)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동서남북 사면에 하나씩 4대문을 두는 것이 일반적(一般的)이었다. 성문을 많이 둘 경우 출입에 편리한 측면이 있을지는 몰라도 성문의 수비와 방어에 어려움이 있으며, 아무리 큰 성이라도 주요 간선도로로 가는 데는 각 방향에 따른 하나의 출입구만으로도 큰 불편함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남한산성처럼 지형여건상 성문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경우에는 암문을 설치하여 출입기능을 대신하도록 하였다. 남한산성의 성문은 모두 4개이다. 동문은 산성의 남동쪽에 있다. 동문은 남문과 함께 사용빈도가 매우 높았던 성문 중의 하나이다. 이 성문의 위치와 형태가 선조(宣祖) 때에 이미 보수하였다고 하는 그 동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조(仁祖) 2년1624 새로 수축된 이후, 정조(正祖) 3년1779 성곽보수시에 성문도 보수하였다. 이 때 다른 문과 마찬가지로 이름이 하나씩 붙여졌는데, 동문은 ‘좌익문(左翼門)’이라 하였다. 이 문을 좌익문이라 한 것은 국왕은 남면(南面)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므로 동쪽이 왼쪽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4대문 중 문루에 현판이 걸려 있는 것은 남문인 지화문(至和門) 하나뿐이다. 성문의 여장은 타의 구분이 없이 하나로 연결한 평여장(平女墻)이며 총안(銃眼)도 설치되지 않았다. 성 좌측의 경사가 급해 계단으로 처리된 부분의 여장은 가운데에 한 개의 총안이 있는 층단형 여장이며, 우측은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는 성벽과 평행하여 옥개정상부도 사선(斜線)을 이루도록 하였다. 문루는 단층이며,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다른 문에 비해 가장 낮은 지대에 축조되어 있어 성문은 지면에서 높여 계단을 구축하였기 때문에 우마차의 통행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따라서 물자의 수송은 수구문 남쪽에 있는 제11암문으로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동문 서남쪽 부분은 1973년 남한산성-광지원 간 8m 도로 확장공사로 성벽이 잘려 있고, 동문 남서쪽 60m 지점에는 성 내의 주배수구였던 수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편으로 물길을 우회시켜 배수로(排水路)의 기능을 상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