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르그 레흐니가 알렉스 리치와 협업한 <빈말>(2008)은 구멍만으로 이루어진 텍스트 기반의 포스터 작업입니다. 개조한 비닐 커터와 특별 제작한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를 이용하여 일정하게 조절된 속도로 구멍들이 뚫립니다. 이 구멍들은 글씨체를 만들고 교훈적인 메시지를 작성합니다. 개조된 애플 TV는 90도 회전된 LCD 모니터와 연결되어 있고, 소프트웨어는 레이아웃 옵션이 없고, 텍스트는 최대 다섯 줄 까지만 쓸 수 있습니다. 글자 크기는 자동으로 결정되는 등 제작될 포스터의 선택지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는 창작을 위한 어떤 기술 시스템이든지 항상 존재하는 제약 조건을 가시적으로 보여줍니다.
<빈말>은 마르셀 뒤샹이 <커다란 유리>(1920)의 작업 노트를 박스에 담아 출판할 때 박스 뚜껑에 도트로만 이루어진 글자를 쓴 것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1960년 리처드 해밀턴은 마르셀 뒤샹의 박스를 타이포그래피적이고 언어학적인 영어로 번역하여 책의 모양으로 출판했고 알파벳의 사라진 활자체를 해석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2005년 조너선 헤어즈와 알렉스 리치가 그 알파벳을 디지털 활자체로 완성하여 구멍 뚫린 포스터 한 쌍을 수제작하여 마크 오언스가 큐레이팅한 프리 라이브러리에 기증했습니다. 이는 자동화되고 기계화된 제작 방법의 가능성을 탐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알렉스 리치는 영국 웨일스 페너스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사회 구조 속에서 일종의 도구로 기능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양상을 탐구하며, 이를 다학제적 협업을 통해 실천하고 있습니다. 최근 참여한 전시로는 «뒤돌아보지 마세요»(에인션트 & 모던/런던), «이건 심각해요»(스위스 비엘), «무의미한 말들»(스위스 인스티튜트/뉴욕), «해야 할 말»(생갈렌 미술관/스위스), «글쓰기와 그리기에 대한 최근의 역사»(ICA/런던)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