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육이 61세 때인 1640년(인조 18) 한준겸韓浚謙의 아들인 한회일韓會一이 주도한 동갑계同甲稧의 계첩이다. 우의정 강석기姜碩期, 상호군 한회일, 호조참의 김육, 나주목사 김광욱金光煜, 예조참의 이성신李省身, 사헌부장령 이경李坰, 장예원판결사 윤겸선尹兼善, 전라도병마절도사 황집黃緝, 함경북도병마절도사 이언척李言惕, 성균관직강 권칭權稱, 사재감첨정 이후재李厚載 등 모두 12인으로 구성되었다. 계의 명칭은 ‘경진동갑계庚辰同甲契’였다. 계첩의 앞에 있는 그림에는 12인의 계원 중 5인만 앉아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들은 강석기․김육․김광욱․이성신 등이다. 한회일은 그림 왼쪽 하단에서 볼 수 있듯이 수계修稧하고 있고, 멀리서 말을 타고 오는 사람이 있는데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나머지 7인은 도착하지 않았음을 강석기의 서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추입追入으로 기록되어 있는 황집․이언척․권칭․이후재 등은 이날 참석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계회稧會의 서문은 김육金堉(1580∼1658)이 지었는데, 이 계첩에는 잠곡의 자字인 ‘백후伯厚’의 도서인이 찍혀 있다. 후에 영조는 김육의 손자인 김시묵金時默에게 그 초상 및 갑회첩甲會帖을 모시고 올 것을 명하여 친히 열람을 마치고, 김육의 전신상 초상의 ‘숙묘어제화상찬肅廟御製畵像贊’과 ‘갑회첩’가운데의 시를 차운次韻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