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는 신라의 세가지 보물 가운데 장륙존상과 구층목탑이 있었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백 명의 고승을 모셔 놓고 왕이 참석해 설법을 듣던 백고좌강회가 자주 열렸던 신라 호국불교의 대가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553년 월성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황룡이 나타나자 이를 절로 고쳐 짓고 황룡사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황룡사는 착공한지 17년만인 진흥왕 30년569에 1차 완공되었고, 574년에 본존불인 장륙존상을 안치하였다. 이어서 선덕여왕 645년에는 구층목탑을 지었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중건이 있었고, 목탑이 완성된 뒤 목탑의 동남쪽에 종루를, 서쪽에 경루를 지어 가람배치를 완성하였다. 황룡사는 고려시대까지 그 원형이 유지되었으나, 1238년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렸다. 1976년부터 시작된 발굴조사 결과, 황룡사는 남쪽으로부터 중문·탑·금당·강당이 중심선 상에 자리 잡고, 중앙 금당의 좌우에 각각 회랑을 갖춘 동·서금당이 위치한 1탑 3금당식이었음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