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전은 행궁 북쪽 담장 밖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사시 종묘의 위패를 옮겨 보관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행궁 건립 당시에는 없었으나 숙종 37년(1711) 부윤 김치룡이 우실과 같이 지었다. 좌전과 우실의 건립은 남한산성행궁이 일반적인 행궁이 아닌, 임시수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한 곳(보장처)이었음을 뜻한다. 좌전이라는 명칭은 건립 당시 별궁, 별전 등이 논의 되었지만 결국 봉안처가 행궁의 좌측에 위치하므로 좌(左)를 붙이되 예의 의미를 지는 묘(廟)를 감추고, 전(殿)을 붙여 사용하게 되었다.
우실은 사직을 모시는 곳으로 숙종 37년(1711)에 좌전과 함께 건립되었다. 사직단을 ‘우실’이라 한 것은 중국 주대(周代) 이후 도성배치법인 ‘좌묘우사(左廟右社)’에 따른 것으로 궁궐을 중심으로 좌측에 종묘, 우측에 사직을 배치하는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