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수朴珪壽(1807∼1877)가 관직생활을 시작한 이듬해에 용강현령으로 재직하고 있던 1849년(헌종 15)에 형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이다. 청나라 사신이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에 민심이 동요하고 있다는 시국에 대한 일과 서양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용강현의 위치를 서울과 비교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그에 따르면, 용강龍岡은 한양과 비교하여 위도가 2도가 높은 39도로 여름과 겨울의 길이가 차이가 있고, 또 연경燕京과 비교하여서는 경도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서양과학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