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주자는 고려인의 일상생활과 밀착된 기명으로, 고려 전시기에 걸쳐 생산, 소비되었다. 술을 따르는 주기(酒器)로 사용되다가 차 문화의 유행에 따라 점차 다기(茶器)로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중국 월주요(越州窯)의 영향으로 제작되었고 이후 동시대 송(宋)·요(遼)·원대(元代)의 여러 가마에서 제작된 중국 청자 및 백자 주자의 양식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자 주자는 중국 자기와 금속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점차 이를 고려적으로 수용하여 독창적인 형태로 변모하여 발전시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