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현의 <20세기의 추억>은 90년대 제작된 일련의 역사화 연작 중의 하나이다. 이 연작들은 아직도 생생한 20세기의 사건들을 개인의 경험 속 기억으로 재구성 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작품은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는 모습을 캔버스 위에 단색의 목탄을 이용하여 극도로 정확하고 섬세하게 그려 놓은 작품이다. 작품 속 인물들의 불안한 표정은 당시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검은 상자와 이미지의 결합은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형식적 특성입니다. 입체적인 검은 상자의 중앙에 마치 스크린처럼 놓인 캔버스는 관객들로 하여금 작은 영화관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캔버스 앞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점멸하는 조명은 관객들을 그가 그려 놓은 드로잉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그림 속 어린 소년들은 패잔병들 중 하나일 뿐 아니라 동시에 누군가의 아들이나 가족이었을 것이다. 거대 역사의 흐름 속에 묻혀가는 개개인의 삶에 조명을 가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부각시키려는 조덕현의 주제의식은 그림과 연결된 형형색색의 실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작은 한 올에서 시작된 다채로운 명주실의 뭉치들은 역사의 큰 흐름 앞에선 무기력하지만 개개인의 삶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인간임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