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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조복형 문인석

작자미상1400/1900

우리옛돌박물관

우리옛돌박물관
서울특별시, 대한민국

무덤 앞에 배치하는 석물(石物)의 하나로 장군석, 석수(石獸)와 함께 능묘를 수호하는 조각물이다. 공복(公服)차림의 문관의 형상으로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량관(金梁冠)을 쓰고 손에는 홀(笏)을 들고 있다.
능묘 주위에 문인석을 배치하는 풍습은 중국의 전한대(前漢代)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풍습은 신라시대(BC 57-AD 935)에 당나라의 영향으로 능묘제도가 정비된 이후 조선시대(AD 1392-1910)까지 이어진다. 문인석은 당시의 조각양식을 보여주고 우리나라 능묘제도의 변천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금관
조선시대 문무백관(文武百官)이 조복(朝服)을 입을 때 머리에 쓴 관으로, 금량관(金梁冠)이라고도 한다. 앞이마에서부터 우뚝 솟아 둥긋하고 마루지게 하고 뒤에 닿는 부분인 양에는 금빛의 세로줄을 그어 골이 나게 하였는데, 품계에 따라 양의 수가 달랐다. 1품관은 5량, 2품관은 4량, 3품관은 3량, 4품∼6품은 2량, 7품∼9품은 1량이었다.

조복
문무백관(文武百官)들이 대사(大祀)·경축일(慶祝日)·원단(元旦)·동지(冬至) 및 조칙(詔勅)을 반포할 때나 진표(進表)할 때에 착용하는 예복(禮服)으로 금관(金冠)과 함께 쓴다고 하여 금관조복(金冠朝服)이라고도 한다. 태종이 관복색을 설치하여 제복과 함께 제작한 것으로, 제용감에서 만들어 관사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입었다. 그러나 중종 이후에는 개인적으로 준비하여 입어야 했으므로 조복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에는 주변에서 빌려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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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금관조복형 문인석
  • 제작자: 작자미상
  • 제작자 출생/사망 날짜: Joseon dynasty
  • 날짜: 1400/1900
  • 작품유형: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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