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행전은 내행전과 함께 인조 3년(1625)에 지어진 하궐의 중심건물로, 궁궐의 편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상궐의 내행전과 동일한 전체 28칸 건물이지만 면적은 약간 작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외행전에서 군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음식을 베푸는 호궤를 행하였다는 기록과 청군이 한봉에서 대포를 쏘아 포환이 외행전 기둥을 맞추어 인조가 내행전으로 거처를 옮겨간 기록이 있다. 평상시에는 광주 유수의 치소로 사용되었으며,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있는 사진을 보면 기둥에 3개의 주련이 남아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聖代初回三古俗(성대초회삼고속)
성군(聖君)이 다스리는 세상이 세 번의 옛 풍속으로 돌아왔으니
禁林長住萬年春(금림장주만년춘)
대궐 숲에는 오래도록 만년의 봄이 머물지로다
春在聖人方寸裏(춘재성인방촌리)
봄은 성군의 마음 속에 있고,
民皆元氣太和中(민개원기태화중)
백성은 모두 원기가 지극히 화(和)한 가운데 있도다.
萬民歌舞康衢月(만민가무강구월)
모든 백성은 번화한 거리에서 매달마다 노래불러 춤추고,
千里煙霞壽域春(천리연하수역춘)
천리에 뻗친 연기와 노을은 태평한 세상의 봄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