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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인 성균관인

1857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관인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중요한 신표(信標)의 하나로 신분이나 용도에 따라 재질이나 크기 등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성문화되어 엄격히 규정되었다. 관인은 용도에 따라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관청의 이름이 새겨진 관청인, 관직의 이름이 새겨진 관직인이 대부분이며 이외에 문서의 서식과 임금의 결재를 나타내는 관인과 각종 패와 목제 물품에 불로 달구어 찍는 낙인(烙印) 있다. 각 관청의 인장은 정3품 이상의 당상관이 있는 기관은 당상관이, 그 이하의 관청은 그 기관의 장이 사용하였다.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관인이다. 성균관은 오늘날의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상위 교육기관이었다. 생원·진사 시험의 합격자나 고위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였으며, 이들에게는 최종 시험인 대과(大科)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져 상당수가 관리로 등용되었다. 《인신등록印信謄錄》에 1857년의 제작기록이 등장한다.

관인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중요한 신표(信標)의 하나로 신분이나 용도에 따라 재질이나 크기 등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성문화되어 엄격히 규정되었다. 관인은 용도에 따라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관청의 이름이 새겨진 관청인, 관직의 이름이 새겨진 관직인이 대부분이며 이외에 문서의 서식과 임금의 결재를 나타내는 관인과 각종 패와 목제 물품에 불로 달구어 찍는 낙인(烙印) 있다. 각 관청의 인장은 정3품 이상의 당상관이 있는 기관은 당상관이, 그 이하의 관청은 그 기관의 장이 사용하였다.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관인이다. 성균관은 오늘날의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상위 교육기관이었다. 생원·진사 시험의 합격자나 고위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였으며, 이들에게는 최종 시험인 대과(大科)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져 상당수가 관리로 등용되었다. 《인신등록印信謄錄》에 1857년의 제작기록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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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성균관인 성균관인
  • 제작연도: 1857년, 1857년
  • 권리: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 재료: 조각, 조각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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