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行宮)이란 왕이 도성을 떠나 행행(行幸)1)할 때 임시로 머무는 곳으로, 전란시·능행시·휴양 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수원행궁, 강화행궁, 전주행궁, 의주행궁, 양주행궁, 온양행궁 등 10여개 이상의 행궁이 있었다. 그 중 남한산성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인조 3년(1625) 남한산성 수축과 함께 건립되었다. 2)실 제로 약 10년 후인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47일간(1636.12.14~1637.01.30) 항전하게 된다. 이후 숙종·영조·정조·철종·고종이 여주에 있던 효종릉(寧陵)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남한산성행궁은 종묘(좌전)와 사직(우실)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으로 일반적인 행궁에 머물지 않고 유사시 임시수도의 중요한 역할을 하던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