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우측 상단에 고종황제 49세 어용임을 명시한 화기가 서툴게 적혀 있다. 『봉명사기(奉命寫記)』와 『석강일기(石江日記)』에 의하면, 채용신은 1900년 겨울 태조 및 열성조의 어진 제작에 이어, 1901년 1월에서 4월 사이에 고종의 49세 어용을 도사(圖寫)한 사실이 있다. 이 작품은 이 때 그려진 도상을 이모한 여러 모본 중의 하나로 보인다. 현재 알려진 고종의 49세 어진은 모두 3점으로 익선관을 쓴 황룡포 차림의 정면상인데, 그 중 국립전주박물관과 원광대 박물관본은 전신상이고, 개인 소장본은 반신상이다. 이 고종상도 이들 3본과 같은 도상이지만, 상반신상이란 점이 다르다. 익선관의 입체감과 육리문에 이르기 까지 안면의 치밀한 묘사 등, 채용신 특유의 사진영상식 사실력이 돋보인다. 수염 부분이 다른 화본들에 비해 변색된 탓인지 옅게 보이고, 이로 인해 병색을 자아내지만, 상모는 몇 살 더 젊은 느낌을 준다. 화면 왼쪽 상단에 탄생 연월일과 시까지 적어 넣은 것으로 보아 탄신 기념용으로 민간에서 봉안하기 위해 유통되던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