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음 이덕형(1561~1613)은 조선 중기 재상으로 오성 이항복(1556~1618)과 함께 ‘오성과 한음’ 일화로 유명합니다. 이덕형은 1580년 벼슬길에 오른 이후 예조참판, 대제학을 거쳐 병조판서, 영의정 등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습니다. 광해군 즉위 후, 임해군 처형에 반대하다 관직을 박탈당한 후 1613년 병으로 숨졌습니다. 이항복은 이덕형의 죽음 후 유가족들과 함께 장례를 치르고 묘지명을 직접 지어주었고 이를 통해 두 사람의 우정이 매우 각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조정에서는 공신 책봉을 많이 하였고 도화서 화원에게 초상화를 그리도록 명하여 공신에게 함께 하사하였는데, 이 초상화도 그중 하나로 추정됩니다. 초상화 속 이덕형의 총기 어린 눈빛과 자연스럽게 다문 입에서 강직한 인품을 짐작하게 합니다. 매우 가는 붓으로 눈매와 수염, 동공의 홍채까지 섬세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한 것은 서양 초상화에서 보기 힘든 우리 초상화만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연한 상아색으로 그린 관복의 간략한 옷 주름에서 초본적 성격이 나타나며 낮아진 검은 사모에 짧고 넓어진 좌우 뿔의 양태와 그 속의 세밀한 무늬는 17세기 작품임을 뒷받침합니다.
그동안 이덕형 초상화는 반신상(일본 덴리대 소장)과 20세기 이모본(경기도박물관 소장), 반신상(개인 소장) 등 총 3점이 현재 전해져 왔습니다. 박물관에서는 본 작품이 비록 초본이지만 이들보다 섬세한 회화적 필치로 예술적 가치가 있음을 판단하여 지정신청을 하였고 2019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아울러 <오성부원군이공초상화>(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와 회화 양식상 비슷한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좌안칠분면의 구도, 음영 없는 얇은 담채, 낮아진 검은 색 사모와 무늬 등이 유사합니다. 화면 오른쪽 상단 여백에 붉은색 글씨로 ‘용’이라고 적혀 있으며 화첩인 이항복 초본은 표지에 ‘영의정오성부원군 백사이선생상’과 함께 왼쪽 표지에 그의 간략한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초본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인정되어 초상화 정본을 그리는 데 이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