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강제 합방이 이루어진 직후 1910년 쌀 생산량은 149만 톤이었다. 그 뒤 화학비료의 사용과 개간 등에 힘입어 1930년대 초반 쌀 생산량은 평균 243만 톤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10년 101kg에서 1934년에는 52kg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하였다. 그 이유는 일본으로 막대한 양의 쌀이 일본의 쌀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강제로 수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는 슬픈 농업장려 포스터라고 볼 수 있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루면서 일본은 전쟁 수행을 위해 각종 캠페인을 벌이고, 공동 공출, 물자절약, 징병과 징용을 독려하였다. 전쟁의 장기화로 군용물자가 부족해지자 면화, 양잠장려정책을 강압적으로 실시하고, 쌀을 비롯한 곡식은 물론 못 한 자루도 소홀히 하지 말자는 운동으로 확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