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영(1946- )의 작품 속에 일관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은, 서양 미술의 고전을 차용(借用)하여 자기 나름으로 화면을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고전 작품은 재해석되어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고, 때로는 엉뚱하고 기발한 이미지가 추가되기도 한다. 그 결과 작품의 원래 의미와 현재 의미간의 차이점에서 추출되는 개별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보는 것'보다는 '읽는 것'의 충동을 일으키는데, 이것은 작가와의 지적 교감을 가능케 한다.
<시간의 복제 87-7>(1987) 작품은 한만영의 고전에 대한 흥미가 한국의 전통에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단이 절단된 비너스(Venus)의 두상과 모래 시계, 그리고 망아지를 끌고 있는 소년의 이미지는, 그가 시간의 초월뿐 아니라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공간의 초월 또한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