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경주시 석장동에서 발견된 신라의 대표적인 금석문 자료이다. 임신서기석이라는 명칭은 첫머리에「임신壬申」이라는 간지干支가 있고, 충성을 서약하는 내용이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윗면이 넓은 화강석에 화랑으로 보이는 두 청년의 공부와 인격 도야에 관한 맹세의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구획선 없이 다섯 줄 74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명문 가운데 임신년이라는 간지가 어느 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비문 중에 『시경詩經』,『상서尙書』,『예기禮記』등 신라 국학國學의 중요한 교과목이 등장하고 있어 비문의 임신년을 국학이 체제를 갖춘 뒤인 성덕왕 31년(732)으로 보는 설도 있다. 그러나 화랑도의 근본정신과 통하는 충도忠道의 실천을 다짐하는 내용이 있으므로 화랑도가 융성하였던 진흥왕 13년(552)이나 진평왕眞平王 34년(612)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문헌자료가 많지 않은 고대 역사의 연구에서 시대상이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