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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왕 훈유

영조 22년(1746)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영조가 영조 22년인 1746년 12월에 사도세자에게 숭검조당[崇儉調黨 : 검소함을 존숭하고 당파를 조절하는 것[의 의미를 강조하며, 64자의 교훈을 적어 훈계하고 또 그 글을 인쇄하여 반포하고 돌에 새겨 길이 남기게끔 한 것이다. 창덕6717, 창덕 6709가 각석의 전문을 이루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검소함을 존숭(尊崇)하고 당파를 조절하는 것이 나의 확고부동한 마음이다. 검소함을 존숭한 후에야 백성을 사랑할 수 있고 당파를 조절한 후에야 백성을 보호할 수 있다. 선을 실천하는 근본이요 정의를 구현하는 근본이다. 성인이 되고 현인이 되는 것도 진실로 숭검조당(崇儉調黨)에서 시작된다. 간절한 그 글이니 어찌 감히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조금이라도 소홀히 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조상의 제사를 지낸단 말인가? 아! 세자여! 성심껏 가슴에 새겨 둘지어다.
‘순순기문(諄諄其文)’의 ‘기(其)’자는 어떤 본(本)에는 ‘제(諸)’로, ‘기감홀언(豈敢忽焉)’의 ‘기(豈)’자는 어떤 본(本)에는 ‘기(其)’자로 되어 있다. 이 글을 써서 인쇄하여 반포하고 돌에 새긴다. 본래 나무에 새겼으나 다시 돌에 새김은 나의 굳센 의지이며 나의 굳센 의지이다. 이것을 일러 금석지문(金石之文)이라 할 만 하니 비록 소홀히 하려 하나 어찌 감히 소홀히 한단 말인가? 때는 병인년(1746) 계동(季冬)(12월) 정무를 틈탄 여가에 64자를 썼으니 간곡히 타이르는 뜻이 깊다. 그대들 대소(大小) 신하들은 나의 이 마음을 이해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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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영조대왕 훈유
  • 제작연도: 영조 22년(1746)
  • 권리: 국립고궁박물관
  • 재료: 조각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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