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英祖)가 64세 되던 해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쓴 자서전적인 기록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서
나는 여덟 살에 작위를 받았으니 이 해는 경진년(庚辰年)(1700)이다. 계미(癸未)(1703)에 관례(冠禮)를 행하고, 갑신(甲申)(1704)에 길례(吉禮)를 행하고, 신축(辛丑)(1721)에 왕세제로 책봉되었으며, 임인(壬寅)(1722)에 성균관에 입학하였고, 갑진(甲辰)(1724)에 왕위를 이었다. 처음에는 연잉군(延礽君)으로 봉해지고 아울러 종친부(宗親府)의 당상(堂上), 사옹원(司饔院)의 도제조(都提調), 종부시(宗簿寺)의 도제거(都提擧),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의 도총관(都摠管)을 겸임하였다. 잠저(潛邸)에 있을 때의 호는 양성주인(養性主人) 또는 육오거사(六吾居士)였다. 51세에 기사(耆社)에 들어갔다. 64세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