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영의 초기작은 수집해오던 동식물 도감이나 자연물 사진집을 한 권 골라 첫 장부터 마지막장까지 나오는 모든 이미지들을 하나의 화면 속에 모두 그려 넣어 한 권의 책을 한 점의 그림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후의 작업들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옮겨 다니며 일년의 풍경을 그리는 형식이었다. 한 화면에 사계절을 모두 누적해서 그리면 그림도 끝나고 레지던시도 끝난다. 그의 그림 속에는 날마다 기록하듯 그린 것들이 쌓인 결과, 공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중첩된 풍경과 서로 다른 시간들이 혼재된 순간이 펼쳐진다. 그는 이미 그려진 그림 위에 그리고 또 그리는 방법을 통해 이미지의 누적을 지속하며, 이를 통해 그의 작업은 파편화된 화면으로 점차 확장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