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하(物派)의 이론과 작업의 선구자인 이우환(1936- )의 <선으로부터>(1974)는 흰 캔버스 바탕에 파란색 선들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길게 내려 그어가면서 그 흔적을 담은 것이다. 단조로운 화면구성과 단색의 색채는 담백한 동양적 미의 세계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선들은 하나로 완성된 개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이며, 그 관계는 운율적이다. 굵기와 형태가 거의 동일한 선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선명한 푸른색은 밑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그 자취가 사라지면서 희미해진다. 이러한 선은 결과보다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 내재된 본질적인 의미를 부각시킨다. 이 작품의 근본적 요소인 선은 동양적인 기(氣)와 생명력의 근본이자 출발점이 되고, 따라서 작품은 마음을 비우고 선을 긋는 일회적인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무위자연(無爲自然)’ 상태에 가까워지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