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제

1711. 9. 25. - 1799. 2. 7.

건륭제는 청나라의 제6대 황제이다. 청 제국이 산해관을 넘은 뒤 자금성에서 청나라의 군주가 천명을 상실한 명나라의 주씨를 대신하여 중국의 새로운 수명천자가 되었음을 선언한 이래 네번째의 황제이기도 하다. 성과 휘는 아이신 교로 훙리, 묘호는 고종, 시호는 법천융운지성선각체원입극부문분무흠명효자신성순황제, 짧은 시호로는 순황제이며, 연호는 건륭이다. 제4대 황제 강희제의 손자이자 제5대 황제인 옹정제의 넷째 아들이며, 옹정제의 후궁 출신인 효성헌황후 뇨후루씨의 소생이다.
어릴 때부터 제왕이 지녀야 할 자질이 보여 할아버지 강희제와 아버지 옹정제에게 인정을 받았다. 1735년, 옹정제가 급사하자 저위비건법에 따라 황위에 올라 먼저 만주족과 한족 대신들의 갈등을 조정하며 내치를 다진 후 대규모 정복 사업과 문화 사업을 펼쳤다. 문화 사업으로는 옹정제 때 마카오로 추방된 로마가톨릭교회 산하 예수회 선교사들을 다시 불러들여 북경에 서양식 건물을 짓도록 허락한 것과 특히 예수회 수도사인 주세페 카스틸리오네에게 서양식 궁전인 원명원을 개·보수를 감독하게 한 것이 있다. 그 자신 역시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아 시와 서화를 즐겼고 각지의 시인과 화가들을 독려하였다. 특히 10년의 세월을 들여 고금의 도서를 수집하여 중국 역사상 최대의 대편찬 사업인 《사고전서》를 편찬함으로써 고서적들을 많이 발굴케 하였으나 문자의 옥도 단행하여 청 제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책들은 모두 금서로 만들었다.
또한, 10차례에 걸친 정복 사업을 펼쳐 준가르와 위구르를 복속시키고 티베트, 미얀마, 베트남, 네팔까지 진출하는 등 현재 중국 영토의 틀을 만들었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내놓고 여기에 사치, 반란, 서방과의 부실한 외교, 그리고 희대의 탐관오리로 평가받는 뇨후루 허션을 20여 년간 총애하여 말년엔 매관매직과 부정부패가 빈번히 일어나고 국고가 비어 결국 청 제국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796년 말, 자신은 감히 할아버지인 강희제의 재위 기간을 넘을 수 없다며 재위 60년째에 태상황제로 물러났지만, 막후에서 정책 최고 결정권을 행사하여 여전히 실권을 쥐고 있었다. 재위기간 60년에 태상황제로서 실권을 장악한 4년까지 합치면 건륭제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실권을 장악한 황제였다. 스스로 십전노인이라 칭하고 그렇게 불리기를 좋아하였으며, 중국 최후의 태평성세인 강건성세의 마지막을 장식한 황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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