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북은 조선 숙종, 영조 때의 화가이다. 본관은 무주, 초명은 식(埴), 자는 성기·유용·칠칠, 호는 호생관·월성·성재·기암·거기재·삼기재이다. 자신의 이름인 북자를 반으로 쪼개서 자를 칠칠로 지었으며, 붓(毫) 하나로 먹고 산다고 하여 호를 호생관이라고 지었다.
산수, 인물, 영모, 화훼, 괴석, 고목을 두루 잘 그렸는데 특히 산수와 메추리를 잘 그려 최산수, 혹은 최순 즉, 최메추라기라는 별칭을 얻었다. 필법이 대담하고 솔직하여 구애받은 곳이 없었으며 남화의 거장인 심사정과 비길 만한 인물이다. 한 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경을 끼고 그림을 그렸으며 성질이 괴팍하여 기행이 많았고 폭주가이며 여행을 즐겼다. 그림을 팔아 가며 전국을 주유, 금강산 구룡연에서 천하의 명사가 천하의 명산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외치며 투신했으나 미수에 그친 일도 있다. 칠칠거사로 알려진 많은 일화를 남긴 위인으로 시에도 뛰어났으며 49세로 서울에서 죽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미법산수도>를 위시한 <송음관폭도> 와 <수하담소도>, <설산조치도>, <의룡도> 등 다수가 있다.
기이한 행동과 괴팍한 성질로 유명한데, 예를 들어 세도가가 자신의 붓솜씨를 트집잡자 분을 내며 자기 손으로 한쪽 눈을 찔러 버렸다고 하며 열흘을 굶다가 그림 한 점을 팔아 술을 사 마시고는 겨울밤에 눈구덩이에서 얼어죽었다. 이때 최북의 나이가 49세였는데, 최북이 49세 때 죽을 것을 알고 자를 칠칠로 정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남공철이 그의 전기인 〈최칠칠전〉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