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는 미국의 배우, 모델, 가수로 본명은 노마 진 모터슨이다. "금발 미녀"라는 콘셉트를 잡은 것으로 유명하며, 1950년대와 1960년대 초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섹스 심벌의 상징이 되었으며, 성에 관한 당시 시대의 사고를 변화시키게 만들었다. 10여 년간 활동하면서 미국을 포함한 세계를 풍미하였으며, 1962년 먼로가 사망할 때까지 번 돈이 2억 달러에 달했다. 그리고 반세기가 넘은 기간에도 계속해서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혀 있다.
마릴린 먼로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양부모의 집과 고아원에서 보냈으며, 16살에 결혼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전쟁 물자 생산의 일환으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영화 제작사 퍼스트 무비 픽처 유닛의 한 사진작가를 만나게 되면서 핀업 모델을 시작하게 되었다. 모델 일을 하는 도중에는 20세기 스튜디오와 컬럼비아 픽처스에서 제작하는 영화에 단열으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한 후인 1950년 말에 폭스와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계약을 맺은 2년 동안에 《당신도 젊다》, 《몽키 비지니스》를 포함한 코미디 영화와 《밤의 충돌》, 《돈 보더 투 노크》 등의 누아르와 스릴러 장르에도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유명해지기 전에 누드 모델로 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잠깐 파문이 일기도 하였으나, 마릴린 먼로는 이로 피해를 입지 않았고, 오히려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1953년, 마릴린 먼로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시장성이 있는 스타로 자리매김하였다. 누아르 영화로 먼로의 성적 매력에 초점을 맞춘 《나이아가라》에 출연하였고, "백치미 금발 미녀"라는 이미지를 굳히게 만든 코미디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와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에도 출연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에 플레이보이 1호의 표지와 센터폴드의 사진으로 먼로의 누드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자신의 커리어 내내 대중들에게 비춰지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관리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던 먼로는 지속적으로 백치미 금발 미녀라는 비슷한 결의 캐릭터만 맡기는 것과 적은 보수로 폭스에 실망하기도 했다. 또한 1954년 초에 한 영화의 출연을 거절하여 잠시 연기를 하지 못 하기도 하였으나, 이윽고 먼로의 최고의 흥행작인 《7년만의 외출》에 출연하게 된다.
폭스가 먼로의 계약과 관련된 변경을 주저하자 1954년에 자신의 영화 제작사를 설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