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 해전은 1942년 6월 4일부터 6월 7일까지 벌어진 태평양 전쟁의 결정적인 해전이다. 이 해전은 진주만 공격이 있은 지 6개월 뒤, 그리고 산호해 해전이 있은 지 1달 뒤에 발생했다. 체스터 니미츠, 프랭크 잭 플레처, 레이먼드 A. 스프루언스가 이끄는 미국 해군은 야마모토 이소로쿠, 나구모 주이치, 곤도 노부타케가 이끄는 일본 제국 해군의 공격함대를 미드웨이 환초에서 격퇴하였고 일본군 함대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 군사 역사학자인 존 키건은 미드웨이 해전을 "해전 역사상 가장 놀랍고 결정적인 타격"이라고 불렀고, 해전 역사학자인 크레이그 사이먼즈는 미드웨이 해전을 "전술적으로 결정적이었고 전략적으로 영향을 남긴 살라미스, 트라팔가르, 쓰시마와 더불어 세계사에서 가장 중대한 해전 중 하나"라고 불렀다.
이전의 진주만 공격 때처럼 일본의 작전은 태평양의 전략적 강국인 미국을 제거하여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자유롭게 설립하는 것을 추구하였다. 일본은 사기를 저하시키는 또 다른 패배로 인해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항복하기를 바랐고, 일본이 태평양에서 우세를 점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미국 항공모함을 함정으로 끌어들여 미드웨이를 점령하는 것은 도쿄를 공습했던 둘리틀 공습에 대응하여 일본의 방어 교두보를 확장하는 전체적인 "장벽" 전략의 일부였다. 또한 이 작전은 피지, 사모아, 하와이를 공격하는 더 넓은 작전의 사전작업으로 여겨졌다.
작전은 일본이 미국의 대응을 잘못 가정하고 초기에 부대를 잘못 배치하여 불리하게 바뀌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군 암호해독자들이 일본군이 계획한 공격의 위치와 날짜를 판단할 수 있게 되어 사전에 경고를 받은 미국 해군이 매복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군 항공모함 4척과 미군 항공모함 3척이 전투에 참여했다. 일본 제국 해군은 진주만을 공격했던 중형항공모함 아카기, 가가, 소류, 히류를 잃었고, 중순양함 미쿠마도 이 해전에서 잃었다. 미국 해군은 중형항공모함 USS 요크타운과 구축함 USS 해먼을 잃었다.
미드웨이 해전과 솔로몬 제도 전역의 소모전 이후, 증가하는 사상자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일본은 항공 모함을 비롯한 물자와 숙련된 조종사들과 같은 인원 대체 능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한편 거대한 산업 능력 및 부대 훈련방식 덕분에 미국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입은 손실을 쉽게 대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