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실용

조선시대 남성 복식
조선시대 남성의 옷은 엄격한 신분제도에 따른 제한과 규제 하에 있었다. 지배계층의 남성들은 여러 가지 관복을 그들의 직책이나 품위에 맞게 유지하였다. 이전 시대부터 입어온 저고리와 바지 그리고 포로 이루어진 기본적인 구성을 토대로 시대정신과 문화를 반영하였다.

조선시대
1392-1910

1392년에 건립된 조선 왕조는 특별한 문화 융성의 토대가 되었다. 국가의 새로운 정치적 비전은 사회 전반적인 측면에서 유교에 대한 이론적 탐구와 그에 대한 구현을 촉진하였다. 예술의 주된 후원자인 유교적인 왕조와 신흥 사대부는 예술과 문화 발전을 포용하고 장려했다.

16세기
개국 이후 이전 시대의 제도와 문화를 토대로 새로운 국가로서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는 시기로 옷이 매우 크고 넓고 길었다. 특히 다양한 포가 널리 착용되었다.

단령
1501-1600

관리들이 관청에 나가 일할 때 입는 홍색 집무복으로 조선 전기의 특징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  흉배 없이 면포로 만든 소박한 홑 단령으로, 깃 모양은 좁고 둥근 형태이고  소매는 옷길이와 비슷할 정도로 긴편이다. 옷길이는 앞이 짧고 뒤가 조금 긴 형태이며 옆선에는 옆으로 뻗은무가 달리고 옆이 트여 있다. 원래는 분홍색이었으나 현재는 소색으로 변색되었으며 옷고름도 탈락되어 없는 상태이다.

철릭
1501 - 1600

철릭은 조선 중기까지 남자들의 평상복 또는 백관의 융복(戎服)으로 입었던 옷이다. 모시로 만든 홑 철릭으로 하의가 상의보다 다소 길다. 치마폭이 넓어 풍성한 실루엣을 가지며 어깨에 반원형半圓形의 바대를 대었다.

방령
1530-1580

갑옷을 형상화 하여 평상복으로 만든 옷이다. 겉은 작은 꽃무늬 비단(小花紋緞)이며, 안은 명주(紬)로 만든 겹 옷이다. 깃 끝이 네모[방령]지고 소매가 짧으며 옷 길이는 앞이 길고 뒤가 짧아서 주로 말을 탈 때 편하게 입었다. 앞 중심이 좌 우 대칭되어 마주 보는 형태에 5쌍의 매듭단추(假稱 “쌍밀이”)를 달아 앞을 여미도록 하였다.

액주름을 입은 남자
조선시대 멋과 유행 중에서

액주름
1501-1550

사대부가 남자들이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그 위에 덧입었던 옷이다.  겨드랑이 아래에 주름이 잡힌 것이 특징인 옷으로 임란 직후까지 남자들이 일상복의 하나로 입었다. 겉감과 안감을 무명으로 만들었으며 긴 고름을 달아 입을 때 가슴 부위를 한바퀴 돌려 주어 앞에서 묶어준 것으로 활동성에 있도록 만든 옷이다. 쪽빛 얼룩이 남아있다.

직령
1524-1582

조선 중기까지 사대부의 예복이나 외출복으로, 또는 하급관리의 관복으로 입었던 옷이다.  명주로 만든 겉감과 안감 사이에 두텁게 솜을두어 만든 솜 옷이다. 깃은 칼깃형이며 소매는 직선형에 옷길이 만큰 길고, 옷 길이는 앞이 뒷보다 짧다. 옆선에는 무가 달려 옆으로 뻗어 있다. 겨드랑 부위에 좁고 짧은 고름이 2쌍 달려있다.

정응두 단령
1508-1572

조선 중기에 1품 벼슬을 지낸 정응두(丁應斗:1508∼1572)의 무덤에서 출토된 단령이다. 단령은 문무백관들의 관복으로서 가슴과 등에 부착하는 흉배의 문양으로 품계가 구분된다. 이 유물은 구름무늬 비단[雲寶紋緞]으로 만든 것으로, 앞길이가 뒤보다 짧은 형태이다. 가슴과 등에는 1품 벼슬용 직금(織金) 공작흉배(孔雀胸背)가 달려있다. 발굴초기에는 선명한 아청색이었으나 현재는 일부에만 색이 남아있다.

단령, 16세기
우리옷의 멋과 유행 중에서

정응두 철칙
1508-1572

철릭은 조선 중기까지 남자들의 평상복 또는 백관의 융복(戎服)으로 입었던 옷이다. 조선 중기에 1품 벼슬을 지낸 정응두(丁應斗2)가 입었던 옷이다. 구름과 보배 무늬 비단[雲寶紋緞]으로 만든 홑옷으로, 상의(上衣)와 주름 잡은 치마형 하의(下衣)가 연결된 것이 특징이며 활을 쏘기에 편리하도록 소매를 탈착식으로 만들었다.

17세기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실용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16세기에 비해 품과 길이가 작아지고 다양한 포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변화의 시기이다.

중치막
1574-1669

17세기 이후 남자들이 가장 즐겨입던 외출복. 옆자락이 트여있는 세자락 포가 특징이다. 유물은 솜을 두어 누벼준 방한용이다. 겉은 작은 꽃무늬 비단이고 안은 명주로 만들고 사이에 솜을 두어 1.6cm 간격으로 줄줄이 누벼주었다. 소매는 진동에서 수구쪽으로 넓어지는 절구통모양이다.

답호
1581-1633

조선시대 사대부의 외출복이자 의례복이다. 포도 무늬의 얇고 성근 비단으로 만든 홑 옷이다. 끝 잘린 목판 깃에 넓고 긴 소매가 달렸으며 앞자락의 옆선에 달린 무가 뒷길 안쪽으로 들어가 고정되어 두 층의 뒷자락을 이루고 있다.

방령은 마상의(馬上衣)나 무관용 옷으로 기능성이 강조된 긴 옷이다. 이 유물은 솜을 두텁게 둔 솜옷이다. 깃 모양이 네모진 맞깃 형태이고 소매가 매우 짧으며 뒷길 중심에 트임을 주고 옷자락을 가르고, 옆선에 달린 끈에 묶어 옷자락을 고정할수 있도록 하였다. 말을 타는 등의 활동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진 옷이다.

신경유 중치막
1581-1633

17세기 이후 남자들이 가장 즐겨입던 외출복이다. 깃은 직령이며 옆자락이 트여있는 세자락 포가 특징이다. 유물은 무관인 신경유 장군이 입었던 것으로 겉감과 안감을 명주로 만들고 줄줄이 누벼준 누비 옷이다. 왼쪽 소매가 탈착식으로 되어있어 활을 쏠 때 편리하도록 하였다.

이흥망 철릭
1572-1637

백관의 융복 또는 무관복으로 입은 옷이다. 화조문단(花鳥紋緞)으로 된 홑옷이다. 깃은 완만하게 둥글고, 소매는 절구통 모양이다. 상의(上衣)와 주름 잡은 치마형 하의(下衣)가 연결된 깃이 특징으로 조선전기에 비해 치마형 하의의 길이가 많이 길어졌으며, 주름 너비도 넓은 편이다.

18세기
왕조와 사회의 안정 속에 다양한 포를 비롯한 복식문화 또한 안정과 실용의 가치를 반영하고 번성하였다.

이익정 철리
1636-1731

조선 후기에 백관의 융복 또는 무관복으로 입은 옷이다. 왕실 가족인 밀창군의 아들 이익정이 입었던 옷이다. 운보문단(雲寶紋緞)으로 된 홑옷이다. 깃은 둥근형이고, 소매는 매우 넓고 끝이 둥글다. 상의와 하의 비율은 거의 1:3 정도로 치마형태의 하의가 매우 긴편이다. 1700년대 후반의 전형적인 특징이 보여진다.

탐릉군 답호
1636-1731

조선 후기에 창의나 철릭 위에 입었으며 단령의 받침옷으로도 입은 옷이다. 소매가 없는 긴 조끼 형태이고 긴 뒷트임이 있다. 겉감은 연화문늬 비단이고 안감은 명주로 만든 겹 옷으로 깃 모양이 칼깃형태이고 좁고 긴 고름이 달려 있다.

조선 후기의 관리들이 입는 관복이다. 겉과 안을 얇은 구름 무늬 비단[雲紋紗]을 사용하여 만든 겹단령이다. 단령깃을 가진 겉감과 직령깃을 가진 안감을 각각 만들어 끼워입듯이 겹쳐 만들었다. 가슴과 등에는 운학흉배(雲鶴胸背)를 달았다. 소매가 매우 넓고 둥근 깃은 넓어졌다. 옆선에 달린 무는 상부가 삼각형태로 위쪽을 향하고 있으며 무를 뒷길로 젖혀 작은 단추로 사용하여 뒤길에 무를 고정하였다.

답호
1677-1746

남자들이 바지 저고리를 입고 덧 입은 방한용 겉 옷. 무늬 없는 비단에  0.8cm 정도로 정교하게 줄줄이 누벼만든 누비옷이다. 깃은 끝이 각진 형태이고 앞길은 좌우가 마주보는 형태이다. 소매가 매우 짧고 옆선이 트여 있어 활동성이 높은 옷이다.

소창의
1636 - 1731

남자가 바지 저고리 위에 덧 입거나 혹은 저고리 대신 간편하게 입었던 웃옷이다. 겉감은 매화(梅花)와 나비[蝶] 무늬가 있는 비단이고 안은 명주를 사용하여 만든 겹 옷이다. 소매가 매우 좁고 옆선과 뒷중심이 트임이 있어 옷길이 세자락이다. 활동에 편리한 실용적인 옷이다.

소창의의 독특한 형태의 깃과 고름이다. 소매가 부리보다 조금 넓은 둥근 소매이며 포의 길이와 소매의 길이가 거의 같다.

밀창군 조복
1677-1746

의(衣:赤綃衣) 상(裳) 폐슬(蔽膝) 후수(後綬) 대대(大帶) 등을 갖춘 일습이다. 상과 폐슬은 무문사(無紋紗)이다. 의(衣)는 겹으로 되어 있는데 겉은 무문사, 안은 주(紬)로 되어 있다. 대대는 가로는 여지불수문(荔枝佛手紋緞), 세로에는 석류문(石榴紋緞)으로 되어 있다. 후수는 공단(貢緞)에 두 쌍의 운학(雲鶴)을 수놓았다.

밀창군 단령
1677-1746

관리들의 관복. 유물은 조선 14대 선조 임금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의 증손자인 밀창군 이직(李職)의 묘에서 출토된 겹단령이다. 겉감과 안감을 구름무늬 비단[雲寶紋緞]으로 만든 겹 단령이다. 가슴과 등판에 가로38㎝ 세로39㎝의 당상관용 운학흉배(雲鶴胸背)가 달려있다. 옆선에 달린 무는 뒷길로 넘겨 단추로 고정하였다

심의, 복원품

유학자들이 즐겨입는 옷. 복건(幅巾)과 대대(大帶), 채조(采絛)와 함께 착용하였다. 유물은 무늬없는 비단으로 만든 홑 옷으로 허리선에서 의(衣)와 상(裳)이 연결되어있으며 수구, 도련, 깃 여밈에 검정색 선단을 둘러주었다.
허리에는 고름을 부착하여 여밈하였고, 허리 한바퀴를 둘러 앞에서 동심결(同心結)로 매어 있고, 동심결 위에 조대(組帶, 230cm)를 두 가닥으로 나란히 걸어 늘어트렸다.

탐릉군 방령
1636-1734

무관이 바지 저고리를 입고 덧 입은 겉옷이다. 좁은 소매에 깃 모양이 둥글고 좌우 대칭형태의 옷이다. 겉감과 안감을 명주로 만든 겹 옷이다. 뒷길 중심선에 트임이 있다.

19세기 이후
서양 문화의 도입과 정치 경제적인 격변과 함께 옷은 간소화되고 간략화되어 더욱 실용적인 경향으로 변화했다.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전통복과 서양복이 함께 착용되었다.

단령

고종의 배자
1864-1907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高宗)이 방한용 평상복으로 입었던 배자. 소매가 없고 옆이 트여 있는 조끼 형태의 옷으로 저고리 위에 덧입은 옷이다. 유물은 황색 영초단(玲綃緞) 겉감에 녹색 융으로 안감을 겹쳐 겹옷으로 만들고 가장자리를 검정색으로 선을 둘러주었다. 뒷길이 앞길보다 길고, 양 옆선이 완전히 트여있다. 뒷길 진동에 고리가 달려 있으며 앞길의 고름은 탈락되어 없는 상태이다.

조복

조선말기 대사헌을 지낸 심동신(沈東臣)이 입었던 조복이다. 조복은 문무백관이 설날이나 동지 등의 국가 조회, 또는 국가 잔치에 착용하던 예복이다. 이 유물은 가장 겉옷인 붉은 색의 적초의, 치마, 푸른색 중단, 폐슬, 후수와 대대를 갖추어 놓은 조복의 모습이다. 모자는 금관을 쓰고 상아로 된 홀을 들었다.

윤용구 철릭
1801-1900

조선 후기에 백관의 융복 또는 무관복으로 입은 옷. 조선 23대 순조 임금의 딸 덕온공주(1822~1844)의 양아들인 윤용구가 입었던 철릭이다. 상의(上衣)와 주름 잡은 치마형 하의(下衣)가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이 유물은 청색 운보문사(雲寶紋紗)로 만든 홑옷이다. 상의는 곧은 깃에 길이가 짧고 소매는 넓으며 왼쪽 소매에는 쌍밀이 단추를 부착하여 탈착식으로 만들었다.

학창의
19세기

학자들이나 사대부들의 평상복으로 입었던 옷이다. 길은 백색(白色) 순인(純仁)이며, 깃과 도련 수구에 흑색(黑色) 순인으로 선을 둘렀다. 트임은 뒤와 옆선에 있는데 뒤는 진동선까지 옆은 옆선의 반 정도까지 트여있다. 소매는 광수이지만 옷길이에 비해 소매길이가 짧아지는 시대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조선말 반가의 연거복이나 제복(祭服)의 중단(中單)이었다.

마고자
1835-1963

조복
20세기 초

고종의 누비저고리
1864-1907

조선 26대 고종(高宗) 임금이 평상복으로 입었던 저고리이다. 겉감으로 자주색의 꽃무늬 얇은 비단과 안감은 다듬이한 명주를 사용해 그 사이에 솜을 얇게넣고 정교하게 누벼준 누비옷이다. 누비선을 안쪽에서 한줄씩 다름질하여 입체감을 표현했다.

중치막
19세기

남아용 홑 중치막이다. 중치막은 조선 후기까지 남성들이 가장 즐겨 입은 외출복이다. 이 유물은 모시로 만든 홑옷으로 소매끝자락, 옆선, 도련 자락에 선단을 둘러 옷을 마무리하였고, 어깨와 겨드랑이에 바대를 달았다.

흥선대원군 단련
1800년대

조선 26대 임금 고종의 생부(生父)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입었던 단령. 겉감과 안감을 도류갑사 무늬의 얇은 비단으로 만든 겹단령이다. 가슴과 뒤면에 기린흉배[가로 17.5cm, 세로19cm]가 부착 되어있다. 기린흉배는 1895년 이전까지 대군(大君)과 종친명부의 흉배로 사용되었으므로 단령은 제도가 변경되기 이전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제공: 스토리

이 전시는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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