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한평생 해녀이야기'
Haenyeo Museum / October 2014
해녀들은 끈끈한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해녀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물질가기전 입어규칙 설명을 듣고 -  물질할 때는 역시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작업에 임하게 되며,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공동으로 위험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포구에서 배를 타려고 기다리는 해녀들

해녀들의 일터인 바다 밭은 해녀공동체인 어촌계 단위로 운영된다. 제주도에는 100여 개의 어촌계가 마을단위로 있으며 저마다 어장의 경계, 해산물의 채취 자격, 채취방법과 채취기간 등을 규약으로 정해놓고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이는 바다 생태계를 보호하고 공존하기 위한 약속이다.

해녀공동체는 민회의 모습을 보이는데 해녀들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유 토론을 충분히 거친 뒤 결정한다.

어업공동체 - 해녀들은 그 집단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미 구한말부터 '계'의 형태로 자생적인 공동체가 이루어졌으며, 이후 출가해녀의 권익보호를 목적으로 어업공동체가 조직되었다.
해녀탈의장에서 물질작업 준비
불턱에서의 정담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며 작업 중 휴식하는 장소이다. 

둥글게 돌담을 에워싼 형태로 가운데 불을 피워 몸을 덥혔다. 이 곳에서 물질에 대한 지식, 물질 요령, 바다밭의 위치 파악 등 물질 작업에 대한 정보 및 기술을 전수하고 습득하며 해녀 간 상호협조를 재확인하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제주도 해안에는 마을마다 3~4개씩의 불턱이 있었으며 현재도 70여개의 불턱이 남아있다. 

1985년을 전후하여 해녀보호 차원에서 마을마다 현대식 탈의장을 설치하였는데 개량 잠수복인 고무옷의 보급에 따라 온수목욕시설이 갖추어진 탈의장은 필수 시설이 되었으며 불턱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자연지형을 이용한 불턱
불을 쬐어 몸을 데우고
해녀탈의장
바닷가 불턱
불턱에 놓인  질구덕

바다밭의 관리와 마을어장 규약을 어촌계, 해녀회 단위로 정해놓고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에는 수산업협동조합에 소속된 마을 단위의 어촌계가 100개 있는데 해녀들은 어장을 ‘바다밭’이라고 한다. 

각 어촌계는 어장의 경계, 해산물의 채취자격, 해산물 종류에 따른 채취방법과 채취기간 및 금채기간 등 제주해녀의 물질관행을 마을, 어촌계, 해녀회 단위의 규약으로 정해놓고 엄격하게 운영하고 있다.

소라는 체장 7cm 이하는 금지 한다. 오분자기 역시 포획이나 금지를 자율적 설정하여, 체장 3.5cm 이하는 금지한다. 전복은 10cm 이하를 금한다.

소라선별 - 해산물은 크기에 따라 잡는 것을 금하고 있다. 
소라와 저울 (1970년대)
소라와 저울(2000년대)
톳허채

천초와 톳 작업은 해녀들이 공동으로 작업하고 공동으로 판매한다. 개인의 능력과는 별 관계없이 일정기간 동안 작업하여, 말리고 파는 것이다. 젖은 것을 말린 후, 창고에 두었다가 수매 일에 공동으로 30kg, 60kg 한 포대씩 담아서 판매한다.

소라, 전복, 해삼, 성게를 잡는 헛무레는 여름 산란기에는 휴식을 한다. 10월 1일부터 작업을 하고, 3월까지 작업을 한다.

미역은 4월에서 5월, 감태는 7월부터 8월말, 톳은 2월 그믐부터 4월말에 걸쳐 채취한다. 또 천초는 3월 중순부터 6월 말, 청각은 7월에서 8월, 전복, 소라는 10월에서 6월, 성게는 5월에서 7월, 해삼은 겨울에 잡는다.

톳말리기
톳말리기 - 톳은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채취하고 말려서 판매한다.
미역이나 우뭇가사리 채취 시에는 남편들이 물 밖에서 기다렸다가 망사리 가득 채취한 해산물을 뭍으로 옮겨준다. 
천초채취
천초 말리기
해산물을 실을 경운기들
해녀를 기다리는 가족들
천초수확
마중나온 남편들
천초채취를 도와주는 가족들
갯닦이 - 바다는 해녀들의 밭이다. 마을 어장은 자신들의 밭이므로, 어장청소와 잡초인 ‘바당풀’을 제거한다. 일년에 두세 번 치르는 어장청소를 ‘갯닦이’라고 하는데, 이 일은 해녀회 회원들에게 주어지는 의무이다.  
스스로 바다어장 청소를 하는 해녀들

사회 공익에 대한 헌신과 참여

제주해녀들은 예전부터 물질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마을 안길을 정비하거나 학교건물을 신축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바다의 한 구역을 정하여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을 마을일에 수고하는 이장에게 주는 ‘이장바당’, 자녀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육성회비를 충당해주는 ‘학교바당’ 등도 있었다.

1950년 화재로 전 교실이 소실된 성산읍 온평리 해녀들은 마을의 한쪽 바다를 ‘학교바당’으로 삼아 미역을 채취한 수입금 전부를 학교건립자금을 헌납하여 1951~1958년에 걸쳐 학교를 재건하였다.

이후 학교 기성회에서는 1961년 온평초등학교에 공로비를 세워 해녀들의 공덕을 기리고 있다.

온평초등학교 해녀공로비
해녀들이 학교바당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재건한 온평초등학교 건물(1957년)

출가해녀

출가해녀는 19세기 말부터 제주를 떠나 국내의 경상도,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등지와 해외로 출가물질을 나간 해녀를 일컫는다.

1880년대 초부터 일본의 잠수기선의 남획으로, 전복 멸종상태가 시급하게 다가옴에 따라 새로운 작업 장소를 찾아서 1895년에 경상남도로 출가 물질을 떠나고, 경상도, 강원도, 다도해, 경북, 함경 등 육지부 뿐만 아니라, 일본 동경, 오사카, 중국 칭따오, 따리엔, 그리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출가물질을 떠났다. 결국 출가 물질은 어장의 황폐화와 전복이나 소라 등 경제적 환금이 가능한 상품인데,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경제적 인식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발동선을 타고 뱃물질을 나서는 해녀들

해녀노래

제주해녀들이 섬이나 먼 바다 어장으로 이동할 때 노를 저으며 불렀던 ‘노 젓는 소리’를 총칭하여 해녀노래라 한다. 해녀들은 바다 작업장을 오갈 때 직접 노를 저었는데 흥을 돋우기 위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을 즉흥 사설로 엮어 노래하였다. 해녀집단 공동체의 정서와 인식이 잘 표출되고 있어 구비 전승되고 있다. 해녀노래는 1971년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배를 타고 섬으로
해신당

해신당은 해녀들이 물질작업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장소로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잠수굿과 요왕굿은 해녀들의 무사안녕과 풍요를 위해 치러지는 굿이다. 그 중 음력 3월 8일에 동김녕리에서 진행되는 잠수굿은 해녀공동체를 확인시켜주는 대표적인 의례이며 축제이다. 

해녀들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여 제물을 준비하고 굿을 하는, 생업과 의례가 하나가 된 모습을 보여준다. 

의례과정에서 <요왕맞이>는 바다를 관장하는 요왕(龍王)을 맞아들여 풍어와 무사고를 기원하는 제차이며, <씨드림>은 해녀들의 채취물인 전복, 소라, 우뭇가사리, 톳 등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좁씨를 바닷가에 뿌리는 의례이다.

해녀들의 풍어를 기원하는 김녕리 잠수굿에서 심방(무당)이 쌀을 던져 점을 보는 모습
제공: 스토리

Curated
by  — Kang
Kwon Yong, Kwon Mi Seon

Photos from  — Jeju Photo Members, Haenyeo Museum,Seo
Jae Chul, Kang Man Bo

Planning — Haenyeo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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