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에서 반드시 보아야 할 10점의 6·25 전쟁 컬렉션

태극기에서부터 전투기까지

피묻은 태극기전쟁기념관

피묻은 태극기

이 태극기는 6·25전쟁 참전 용사인 로버트 슬로트(Robert Slote) 씨가 소장하고 있던 태극기입니다. 슬로트 씨는 6·25전쟁 당시 부상당한 국군병사를 치료해주었는데, 그 병사가 감사의 표시로 가슴속의 태극기를 꺼내주었다고 합니다. 슬로트 씨는 피 묻은 태극기의 주인을 찾기 위해 2009년 12월 주미 한국대사관을 방문해 태극기를 기증했고, 안타깝게도 태극기의 주인을 찾지 못하여 현재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있습니다.

이천우 이등중사 인식표전쟁기념관

故 이천우 이등중사의 인식표

6·25전쟁에 참전했던 故 이천우 이등중사의 유해와 함께 발견된 인식표입니다. 6·25전쟁 당시 홀어머니를 뒤로한 채 각각 정든 고향집을 떠났던 두 형제가 기나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나 함께 잠들게 된 사연이 있는 유물입니다.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8월 이천우 이등중사의 형(故 이만우 하사, 22세)이 먼저 군에 입대하고 한 달 후에 이천우 이등중사도 자원 입대하게 됩니다. 

형은 1951년 5월 7일 고양지구 전투에서 전사(화랑무공훈장 수훈)하였고, 같은 해 9월 25일 이천우 이등중사마저 20세 꽃다운 나이에 강원도 양구의 백석산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중사는 당시 긴박했던 전투상황으로 시신이 수습되지 못한 채 긴 세월을 홀로 남겨져 있다가 2010년 10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유해를 발굴하여 신원이 확인되었고, 현충원 ‘호국형제의 묘’에 형과 함께 합장되었습니다. 

국군수첩 국군수첩전쟁기념관

정의구 기증 국군수첩

6·25전쟁 당시 기증자(정의구)가 지니고 다닌 수첩입니다. 경북 예천지구 무명고지에서 북한인민군이 던진 수류탄에 오른팔과 심장부분에 파편을 맞았으나... 

국군수첩전쟁기념관

... 당시 왼쪽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지포라이터와 이 국군수첩 덕분에 치명상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 중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린 특별한 유물이지요.

'決死'가 쓰여진 국군 제6사단 제2연대 철모전쟁기념관

'決死'가 쓰여진 철모

'결사(決死)'라는 단어에 6·25전쟁 당시의 용문산 전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녹슬은 철모입니다. 용문산 전투의 승리는 한국군 단독작전으로 제6사단 장병들이 죽음을 각오한 결사의 항전, 즉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의 정신으로 싸운 승리의 결과였습니다. 용문산 전투의 비장한 결의를 보여주는 '결사' 철모는 6·25전쟁실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김재현 기관사의 회중시계전쟁기념관

김재현 기관사의 회중시계와 철도종군기장

6·25전쟁 중에는 군인뿐만 아니라 경찰·여군·학생·노무부대·철도기관사 등 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조국을 지키고자 최선을 다하며 국민총력전을 펼쳤습니다. 회중시계와 철도종군기장은 민간인 기관사였던 김재현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유물입니다.

김재현 기관사의 철도종군기장(1), 제공: 전쟁기념관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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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기관사의 철도종군기장(2), 제공: 전쟁기념관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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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기관사를 비롯한 대전기관사무소 소속의 기관사 3명은 대전역에서 탄약 및 보급품이 적재된 화물차를 영동으로 운반하라는 지시를 받고 옥천군 이원역에 있는 ‘미카3-29호 증기기관차’ 1대에 미군 열차호송병 30여 명을 태우고 대전역으로 출발하게 됩니다. 하지만 적 매복조의 공격으로 기관차 급수조가 파열되어 기관차를 견인할 추진력을 상실한 채로 대전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이후 호송병과 함께 옥천역으로 향하던 중 적의 공격으로 김재현 기관사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휴전 후 김재현 기관사는 철도인으로는 최초로 1983년 현충원 국립묘지 장교 묘역에 안장되었고, 2012년 미국 국방부도 이러한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특별민간공로훈장과 감사장을 함께 수여하였습니다.

기관총사수 고정용 쇠말뚝전쟁기념관

기관총사수 고정용 쇠말뚝

북한군 기관총 사수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들의 발목에 쇠사슬을 묶고 땅 속 깊숙히 고정시켰던 쇠말뚝입니다. 6·25전쟁 전선교착기에 전투가 치열했던 철원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보여주는 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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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51D 무스탕 전투기

6·25전쟁 전까지 대한민국 공군은 단 한 대의 전투기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공군은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2일 이근석 대령 등 우리 조종사 10명이 미 공군에서 F-51D 10대를 인수하여 대구비행장에 도착함으로써 최초로 전투기를 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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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공군은 전쟁 기간 총 130여 대를 운용하며, 8,495회의 출격작전을 통해 다양한 전투에 참가하였습니다. 전시된 항공기는 김영환 장군이 6·25전쟁 중 직접 운용한 우리군 최초의 전투기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10월 20일 등록문화재 제66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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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6 건국기

1930년대 후반 미국에서 개발된 훈련기로 6·25전쟁 중에는 정찰기와 경공격기 등으로 사용된 비행기 입니다. 전쟁 발발 당시 한국 공군은 육군에서 독립한 1949년 10월 1일 이후에도 제대로 된 공격용 항공기를 보유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1949년 9월 '우리 비행기는 우리 힘으로 구입하자'는 범국민적 항공기 헌납 운동이 시작되었고, 목표액을 초과하는 3억 5천만 원(30만 불)의 성금이 모아졌습니다. 

T-6 건국기 계기판전쟁기념관

이렇게 모인 성금 덕분에 한국군은 1950년 3월 캐나다로부터 중고 T-6 훈련기 10대를 도입할 수 있었으며, 같은 해 5월 15일에 거행된 항공기 명명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건국기’란 이름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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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15 vs F-86

제트 전투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에 의해 최초로 개발되어 전장에 투입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전투에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제트 전투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세계 최초의 제트 전투기 간 공중전이 벌어졌던 것은 바로 6·25전쟁 이었습니다. 6·25전쟁 동안 유엔군과 공산군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한 F-86과 MiG-15 전투기의 첫 번째 공중전 상황을 전쟁기념관의 전시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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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4전차

6·25전쟁 당시 북한군은 소련에서 지원받은 T-34전차를 앞세우고 기습 남침하였습니다. 당시 한 대의 전차도 갖지 못했던 국군은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기습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고 초기전투에서 급속히 붕괴되어 낙동강 방어선까지 내몰렸습니다. 처음 보는 T-34 전차는 국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실내전시실 및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있는 T-34 전차가 6·25전쟁의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제공: 스토리

기획: 정서희, 신유진
편집·진행: 정서희
참고자료: 『전쟁기념관 해설을 담다』, 전쟁기념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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