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의 후손: 기억을 위한 연결고리

"하나의 생명을 구한 자는 세상 전체를 구한 것이다." - 탈무드

Nicole Guedj, Président de la Fondation France Israel,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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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구에즈(Nicole Guedj), 전직 장관이자 현 프랑스 이스라엘 재단 이사장

"제가 주관하는 프랑스 이스라엘 재단은 프랑스와 이스라엘의 시민 사회가 더욱 친밀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1차적 목적 이외에도 재단에서는 매년 홀로코스트 추모식 기간 동안 '열방의 의인(Righteous Among the Nations)'의 후손을 이스라엘로 데려가 귀감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열방의 의인, 즉 2차 세계 대전 중에 유대인들을 구한 위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용기와 헌신, 겸허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이제 프랑스 이스라엘 재단은 나치의 만행에 맞선 이 평범한 영웅들을 기념하고 그들의 가치를 새로운 세대에 전달하여 귀감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그녀는 당대 영웅들을 기억할 수 있는 새로운 연결고리(Ambassadors of Memory)인 의인의 후손을 초청했습니다. 

니콜 구에즈

discours d'introduction de Nicole Guedj, 2012,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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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장관이자 현 프랑스 이스라엘 재단의 이사장인 니콜 구에즈가 여러분을 '의인의 후손: 기억을 위한 연결고리' 전시회에 초대합니다.

Fondation France israel,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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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산증인인 홀로코스트의 생존자가 새로운 세대에 전하는 몇 마디 말

Madame Simone Veil, ancien Ministre d'Etat, Présidente d'Honneur de la Fondation pour la Mémoire de la Shoah, Membre du comité d'Honneur de la Fondation France Israel,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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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일(Simone Veil), 전직 국무부 장관, 홀로코스트 기념 재단 명예 이사장, 프랑스 이스라엘 재단의 명예 위원(사진 자료 제공 : 미슐린 펠르티에(Micheline Pelletier)\Corbis)

"프랑스의 의인은 우리나라의 명예를 드높일 뿐만 아니라 박애, 정의, 용기의 정신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시몬 베일 전직 국무부 장관

11,000명의 어린이를 비롯한 76,000명의 유대인을 수용소로 강제 이송한 프랑스 비시 정권(Vichy France)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프랑스 유대인 4분의 3이 죽음의 추적을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의인'은 우리나라의 명예를 드높일 뿐만 아니라 박애, 정의, 용기의 정신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분들은 자신의 목숨과 가까운 사람들의 목숨이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왜 그런 일을 했을까요? 일면식도 없고 아무런 관련도 없었던 남녀와 어린이들을 위해서, 단지 위험에 처한 남녀와 어린이들을 위해서입니다. 이분들은 대부분 '평범한' 프랑스인들이었습니다.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신을 믿든 믿지 않든, 나이가 많든 적든, 부유하든지 가난하든지에 상관없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분들은 단지 자신을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분들은 역사를 창조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가스 연기 속에 사라져 간, 그리고 아직도 매장지를 얻지 못한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기억으로 애달파하는 우리에게, 더 공정하고 박애가 넘치며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주의 또는 미움이라는 독소가 없는 더 나은 세상을 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프랑스의 의인'은 믿음과 희망의 이유를 제시합니다.



 

Marek halter, écrivain, 2010,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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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렉 알텔르(Marek Halter), 작가(사진 자료 제공: 스테판 드 부르지(Stéphane de Bourgies)//Flammarion)

"누군가 살상을 자행하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생명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의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이 '의인'에게 제 생명을 빚지고 있습니다."

마렉 알테르                                                                                                             작가                       



악은 존재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 바르샤바에서 날마다 활개치는 악을 보았습니다. 악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우리는 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은 어떠합니까? 파스칼은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인간에게 자신의 위대성을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야수성만을 보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팡세[명상록], 7장, p.95)." 범죄를 자행하거나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믿음이 지속하게 내버려 둔다면, 홀로코스트의 실상을 보여주고 그 역사를 가르쳐 주고 살인자들을 단죄하는 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하지만 분명 다른 선택이 존재합니다. 누군가 살상을 자행하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생명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 '의인'에게 제 생명을 빚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저는 그분들을 찾아 증언을 수집하고자 나섰습니다. 그리스도인, 불신자, 이슬람인, 평범한 사람, 군인과 정치인 등 많은 분들이 있었죠... 유럽에서 이들은 5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구했습니다. 폭력으로 점철된 이 시대에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선이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모험 중 하나임을 상기시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프랑스 이스라엘 재단과 니콜 구에즈 이사장은 이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이 노력을 후원합시다.

Paul Schaeffer, Président d'Honneur de Yad Vashem,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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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샤퍼(Paul Schaffer), 야드 바셈 프랑스 위원회의 명예 이사장, 홀로코스트 기념 재단 위원

"본인의 목숨을 무릅쓴 이분들은 '아니요'라고 말할 줄 알았으며 매우 분명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폴 샤퍼                                                                                                                                                    야드 바셈 프랑스 위원회 명예 이사장      

야드 바셈 예루살렘 연구소는 이스라엘 의회의 결정에 따라 1953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이 연구소의 설립 취지는 홀로코스트 피해자를 추모하고 유대인 투사들을 기리며 '열방의 의인'이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임시 위원회가 프랑스에 설립된지도 벌써 23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2년간 위원장직을 맡는 영예를 누렸으며 이 기간 동안 3,029명의 기존 지정자에 더하여 129명의 의인을 추가로 지정했습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저에게 그러한 임명식이 얼마나 큰 감회를 주는지 상상도 못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구속해야 하는 이유도 전혀 모른 채 2시간 동안 끈질기게 저를 쫓아왔던 경찰관에게 '미점령' 지역에서 체포되었던 저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언제나 그 장면을 기억하노라면 '아니요'라고 말함으로써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셨던, 그리고 매우 분명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우선순위에 두셨던 분들에 대한 끝없는 존경심이 함께 우러납니다.

그분들이 구출한 사람들이 맞이할 뻔했던 비극과 그분들이 보호했던 아이들이 당할 뻔했던 확실한 죽음을 생각하면 감사의 마음은 더욱 커집니다. 그분들을 기리고자 매년 의인의 후손이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을 방문하는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니콜 구에즈가 주관하는 프랑스 이스라엘 재단과 우리 위원회가 협력하여 조직한 이 행사를 강력히 후원해 주십시오. 마음속에 그분들을 간직하는 나라는 만신전에 그분들의 용기를 새기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Avocat International, Ambassadeur et Envoyé spécial de l'UNESCO,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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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피자르(Samuel Pisar), 국제 변호사, 대사 겸 UNESCO 특사, '피와 희망에 대하여(Of Blood and Hope)'의 저자.

"인간이 인간에게 자행했던 최악의 참극인 홀로코스트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사무엘 피자르                                                                                                                                                            국제 변호사, 대사 겸 UNESCO 특사

인간이 인간에게 자행했던 최악의 참극인 홀로코스트를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들인 우리는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조만간 역사 속에서 잘해야 연구가나 철학자 또는 소설가에 의해 무미건조하게 언급될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면, 이 사건은 부정되고, 왜곡되고, 정치적 선동에서나 언급될 것입니다.

다시 가열되고 있는 우리의 세상을 올바로 직시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생존했던 그 참극을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에게 우리의 세상을 이미 파괴했듯이 그들의 세상도 파괴할 수 있는 점점 더 커지는 위험을 경고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저는 야드 바셈 프랑스 위원회를 설립하고 위원장직을 맡는 데 동의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이 이스라엘 연구소는 홀로코스트의 순교자들과 영웅들을 추모하고 2차 세계 대전 중에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썼던 '열방의 의인'을 기립니다.

저에게 이 사업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발칸 반도, 르완다, 수단, 시리아 및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듯이 현 시대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의인이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특별한 표창 제도가 생겨난 이후 야드 바셈은 유럽에서 25,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의인으로 지정하였으며 그 중 3,500명은 프랑스에 있었습니다. 의인 지정은 그토록 고귀하고 자애로우며 대개 익명인 사람들에 대해 큰 빚을 졌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일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진정 필요한 것으로서 그들이 인류에 남긴 소중한 기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의인의 후손들을 통해 새로운 세대에 귀감을 주고자 하는 니콜 구에즈와 프랑스 이스라엘 재단의 활동은 저에게 큰 격려와 희망이 됩니다.

Avocat et Président de l'association "Les fils et les filles des Déportés juifs de France",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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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 클라스펠트(Serge Klarsfeld), 프랑스에서 강제 이송된 유대인 자녀 협회의 회장

"프랑스에서 생명을 구한 모든 유대인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프랑스인에게 생명의 빚을 졌습니다."

세르주 클라스펠트                                                                    프랑스에서 강제 이송된 유대인 자녀 협회의 회장



프랑스에 있는 8만 명의 유대인이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습니다. 프랑스 유대인의 4분의 3(240,000명)이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 덕분입니까?

그것은 당시 유럽 대부분이 홀로코스트를 묵인하는 와중에도, 1942년 여름 프랑스 경찰들이 아이들과 그들의 어머니들을 체포하여 결국 목숨을 잃게 될 강제 이송을 하도록 프랑스 주둔 독일군에 넘겨주는 것을 보고 정부에 항거한 모든 프랑스인 덕분입니다. 프랑스 전통에 반하는 그 만행에 대한 항거는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정권의 핵심부에까지 강력하게 전달되었고 비시 정부와 게슈타포 간의 대규모 경찰 공조를 완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의인'은 야드 바셈이 '의인'의 칭호를 수여한 몇천 명에 국한되지 않으며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위해 노력한 셀 수 없는 용감한 사람들도 포함합니다.









프랑스 이스라엘 재단 덕분에 이 비극에 대한 기억은 그 어두운 면만이 아니라 밝은 면도 함께 전달될 것입니다. 이 성과는 프랑스 비시 정부와는 반대되는 태도를 보여준 프랑스인들의 실제 행동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우 값진 것입니다.

Fondation France israel,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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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막 마친 후...2012년 에브라스(Hébras) 가족과 블룸(Blum) 가족

Nicole Guedj, Président de la Fondation France Israel,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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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주관하는 재단이 주최한 '의인'의 후손의 이스라엘 방문 여행에서 티에리 두스(Thierry Durce)는 길버트 블룸(Gilbert Blum)과 그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니콜 구에즈

Thierry Durce, arrière petit fils de Pierre et Louise Hebras, Justes parmi les Nations, 2012,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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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과거를 알기 위한 시간 여행... '열방의 의인'인 에브라 부부(Pierre and Louise Hébras)의 증손자인 티에리 두스의 이야기

Thierry DURCE, arrière petit-fils de Pierre et Louise HEBRAS "Justes parmi les Nations", 2012-04,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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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의 증조부모인 피에르 에브라와 루이즈 에브라는 1943년에 블룸 가족을 집으로 들였습니다(자료 제공: Infolive TV). 

Famille Hébras,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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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 부부는 블룸 가족을 지하 저장고에 숨겼으며 토끼장으로 입구를 가렸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공장 다락에 더 나은 은신처를 찾아 주었습니다.

Famille Blum,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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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의 루이즈 에브라와 길버트 블룸 및 그의 누이

Famille Blum,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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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 가족이 구한 블룸 가족

Gilbert Blum et Marceline Dumont,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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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블룸은 에브라 가족의 딸인 마르셀린 뒤몽(Marceline Dumont)과 수년 후 프랑스에서 상봉했습니다.

Gilbert Blum, 2012,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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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길버트 블룸은 예루살렘에서 살고 있습니다.

Feuilleton France Télévisions sur le voyage de petits enfants de Justes en Israel avec la Fondation France Israel, 2012-04,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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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블룸과 티에리 두스의 만남(자료 제공: France 2).

2012년에 티에리는 길버트와 그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떠났습니다.

Famille Blum, 2012,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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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 가족을 보호하면서 에브라 가족은 네 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38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Feuilleton France Télévisions sur le voyage de petits enfants de Justes en Israel avec la Fondation France Israel, 2012-04,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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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있는 블룸 가족의 집에서의 티에리 두스(자료 제공: France 2).

Fondation France israel,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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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막 마친 후...2010년

마소나(Massonnat) 가족과 바데이(Badehi) 가족

Nicole Guedj, Président de la Fondation France Israel et Berthe Badehi, Président de l'association Aloumim, 2011-04,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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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옆에 있는 베르트 바데이(Berthe Badehi)는 현재 알로우밈(Aloumim) 협회의 회원입니다. 마리 마소나가 당시 어린 아이였던 베르트를 숨겨주었습니다." - 니콜 구에즈

Marie Massonat, "Juste parmi les Nations", 2010-04,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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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끈으로 이어진 마소나 가족과 바데오-엘존(Badeho-Elzon) 가족

Marie Massonat, "Juste parmi les Nations", 2007,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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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마소나는 프랑스 사부아(Savoie) 지역에 있는 르 몽셀(Le Montcel)에서 살았습니다. 리옹(Lyon)에 있는 유대인 가족의 요청에 따라 그녀는 베르트 바데이-엘존이라는 이름의 8살짜리 소녀를 자기 집에 숨겨 주기로 하였습니다.

Berthe Badehi, enfant caché en France pendant la guerre et membre de l'association Aloumim, 2011-04,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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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베르트는 엄마를 찾았고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습니다. 하지만 베르트는 마리 및 그녀의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했습니다. 베르트는 야드 바셈 기념관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의인의 벽(Wall of the Righteous)'에 새겨진, 자신을 구해 준 여인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Remise de la médaille de Justes à Marie Massonnat, 1997,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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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미 고인이 된 마리 마소나에게 '열방의 의인' 훈장이 수여되었습니다. 훈장은 그녀의 자녀인 마르셀, 프란시아, 발렌틴에게 대신 수여되었고, 베르트 바데이도 이 행사에 참석하여 마리 마소나의 용기와 친절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Adeline Lelièvre, arrière petite fille de Marie Massonat, "Juste parmi les Nations", 2010-04,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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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마소나의 증손녀인 아델린 레리에브(Adeline Lelièvre)는 니콜 구에즈가 주관하는 프랑스 이스라엘 재단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증조할머니의 이름이 적혀 있는 '의인의 벽' 앞에서 환영을 받았습니다.

Adeline Lelièvre et Berthe Badehi,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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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ine Lelièvre et Berthe Badehi,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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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ine Lelièvre, arrière petite fille de Marie Massonat et Berthe Badehi, 2010-04,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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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방문 중에 아델린은 베르트를 다시 만났습니다. 둘은 이스라엘에서 만난 것을 매우 기뻐했으며 마리와 프랑스의 모든 '의인'을 추모했습니다.

Adeline Lelièvre, arrière petite fille de Marie Massonat, "Juste parmi les Natiions", 2010-04,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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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전 중 피신처를 제공받은 어린이들'의 협회 회원인 베르트는 추모식에 참석하여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화환을 내려놓았습니다. 베르트는 아델린에게 이 상징적 의식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Berthe Badehi expose le lien si particulier qui l’unit à son Juste, 2011-04,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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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린 레리에브와 베르트 바데이(자료 제공: Infolive TV)

"그녀는 내 가족이며 나는 그녀의 가족입니다. 그녀의 할아버지와 저는 형제처럼 지냈습니다."

아델린 레리에브에 대한 베르트 바데이-엘존의 말

Berthe Badehi et la famille Massonat,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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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ine Lelièvre et Berthe Badehi, 2010,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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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찾은 베르트(첫 번째 사진)와 이스라엘을 방문한 아델린(두 번째 사진). 전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

Famille Massonat et Famille Badehi-Elzon,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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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마소나 가족의 집에서, 베르트와 그녀의 며느리 및 손녀들

Fondation France israel,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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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막 마친 후...2012년 카즈나브(Cazenave) 가족과 프리드만(Frydman) 가족

Nicole Guedj, Président de la Fondation France Israel,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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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인 쟝 카즈나브(Jean Cazenave)와 마리 카즈나브(Marie Cazenave)를 기억하면서 프리드만 가족은 레아 카즈나브(Léa Cazenave)와 함께 이스라엘을 방문했습니다." 니콜 구에즈

카제나브 가족과 프리드만 가족의 살아온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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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부터 1944년 사이에 프리드만 가족을 구한 것에 대해 열방의 의인으로 인정받은 마리 카제나브와 쟝 카즈나브의 증손녀 레아 카즈나브

Soumoulou,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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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 산맥의 기슭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스믈르(Soumoulou). 이곳에서 카제나브 부부가 살았습니다.

Marie Cazenave, Juste parmi les Nations, 1941/1945,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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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Cazenave, Juste parmi les Nations, 1941/1945,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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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카제나브 쟝 카제나브

마리 카제나브는 포(Pau)와 타르베(Tarbes)를 잇는 버스가 정차하는 버스 정류장의 관리자였습니다. 쟝 카제나브는 다리가 좋지 않았지만 자전거로 전보를 배달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이 업무 덕분에 그는 의심을 받지 않고 시골 지역에서 유대인 구출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도망 온 피에르 프리드만(Pierre Frydman)과 랄리 프리드만(Lalie Frydman)은 1940년 포에 살기로 결정했는데, 비시 정부가 유대인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임에 따라 포에 사는 유대인들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1942년 프리드만 가족은 주변 마을을 살펴본 후 스믈르 정거장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Famille Frydman,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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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만의 가족: (왼쪽에서부터) 랄리, 르네, 피에르 및 기(Guy) 프리드만

프리드만 가족은 정류장 관리자인 마리 카제나브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는 즉시 그들을 데려다가 마을의 여러 집들에 숨겨주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정류장의 1층에 있는 카제나브의 아파트와 특히 다락방이 은신처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Emile Hourcade, 1941/1945,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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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오카드(Emilie Hourcade)

"마리의 어머니인 에밀리 오카드와 함께 카제나베 가족은 은신처와 음식을 마련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유대인의 피난을 도와주었으며, 마을 주민이 300명에 불과한 곳이었음에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이 일을 수행했습니다."

"3년에 걸친 기간 동안, 에밀리 오카드 그리고 카제나브 부부의 행동과 용기 덕분에 프리드만 가족은 단속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1943년 11월 3일 랄리 프리드만은 스믈르에서 둘째 아들인 르네를 출산했습니다.



1943년과 1944년 사이에 랄리는 피에르가 다락방 창문으로 아들을 볼 수 있도록 르네를 유모차에 싣고 산책하곤 했습니다.

René Frydman,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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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1월 3일 자신이 살았던 스믈르의 집 앞에서의 르네 프리드만 교수

Colette Cazenave lors de la remise de la médaille de Juste parmi les Nations à titre posthume à Jean et Marie Cazenave ainsi qu'à Emilie Hourcade,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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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및 쟝 카제나브의 며느리인 콜렛 카제나브는 시부모의 이름이 새겨진 의인 훈장을 받았습니다(자료 제공: N. Sabathier).

2011년 10월 23일, 에밀리 오카드와 마리 카제나브 그리고 쟝 카제나브는 사후에 열방의 의인 훈장을 받았습니다.

훈장 수여와 더불어, 지금은 우체국으로 사용되는 옛 버스 정류장 건물의 벽에 현판이 설치되었습니다.

Plaque sur l'ancienne gare de Soumoulou,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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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ette et Léa Cazenave,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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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 카제나브와 그녀의 할머니 콜렛 카제나브

카제나브 가족과 프리드만 가족은 전쟁 후에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 우정은 양가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에게까지 전달되었습니다.

Guy et René Frydman avec Colette Cazenave,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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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제나브 가족이 아버지인 피에르 프리드만을 숨겨주었던 정거장 앞에서 기(왼쪽)와 그의 형 르네 프리드만(오른쪽). 가운데는 마리 카제나브와 쟝 카제나브의 며느리 콜렛 카제나브(자료 제공: N. Sabathier).

Pose de la plaque commémorative en l'honneur de Marie et Jean Cazenave au bureau de poste (ancienne gare routière) de Soumoulou.,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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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제나브 가족과 프리드만 가족은 스믈르에 있는 옛 버스 정거장 건물에 현판을 부착하는 행사를 위해 다시 모였습니다(자료 제공: N. Sabathier).

왼쪽에서부터: 기 프리드만, 크리스틴(Christine) 카제나브, 레아 카제나브, 콜렛 카제나브, 알랭(Alain) 카제나브, 르네 프리드만, 미쉘(Michel) 카즈나브

2012년에 프랑스 이스라엘 재단이 주선한 의인의 후손들의 여행 중에 르네 프리드만과 그의 아들 라파엘(Raphaël)은 레아 카제나브와 함께 그들의 증조부모를 추모했습니다.

Raphaël et René Frydman,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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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서 르네 프리드만 교수와 아들 라파엘

Feuilleton France Télévisions sur le voyage de petits enfants de Justes en Israel avec la Fondation France Israel, 2012-04,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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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스라엘 재단이 주선한 의인의 후손들의 여행 중에 예루살렘에서 레아 카제나브, 르네와 라파엘 프리드만(자료 제공: France 2)

"그분들은 제게 이 이야기를 마치 특별할 것이 전혀 없는, 당연한 이야기인양 들려주었습니다"

마리 카제나브와 쟝 카제나브의 증손녀인 레아 카제나브

Fondation France israel, 제공: Fondation France Israel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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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스라엘 재단은 아래의 파트너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 야드 셈 프랑스 위원회(Le Comité français de Yad Vashem)

- 홀로코스트 추모 재단(La Fondation pour la Mémoire de la Shoah)

- 프랑스 철도(SNCF)

- Infolive TV

- 알로우밈 협회(Aloumim Association)"

제공: 스토리

Photographie Simone Veil—Pelletier Micheline, Corb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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