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ⅹ 포스터 디자인 ④ - 1990년대

포스터로 읽는 1990년대 한국영화

한국영상자료원

최지웅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프로파간다)]

김호선의 '사의 찬미' 포스터(1991)한국영상자료원

1960년대에 이어 한국영화에 또 한 번의 르네상스가 찾아옵니다. ‘기획영화의 시대’를 연 90년대, 한국영화는 화려한 날갯짓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화 포스터의 세상에도 ‘사건’이 벌어지죠. 바로 컴퓨터 그래픽의 시대가 열리며 새로운 이미지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호선의 '사의 찬미' 포스터(1991)한국영상자료원

사의 찬미(김호선, 1991)

빈티지한 윤심덕의 포트레이트 사진과 장식적인 로고 타이틀 디자인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포스터. 카피, 크레디트, 영문 제목까지 서체의 선택이나 레이아웃을 얼마나 공들여 작업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포스터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얼마나 크게 갖게 하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정지영의 '하얀 전쟁' 포스터(1992)한국영상자료원

하얀전쟁(정지영, 1992)

안성기의 지친 얼굴, 이경영의 두렵고 긴장된 표정이 메인 카피 ‘나는 시퍼렇게 살아 돌아가야 한다. 죽어도 살아 돌아가야 한다’라는 문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90년대 초반 한국영화 명작 포스터 중 하나. 시퍼렇게 질린 듯한 느낌을 주는 초록 톤의 비주얼은 필름에서 현상된 사진 그대로가 아닌 컴퓨터그래픽으로 표현한 이미지인데, 이처럼 90년대 초반부터 컴퓨터를 사용한 포스터 디자인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현승의 '그대안의 블루' 포스터(1992)한국영상자료원

그대안의 블루(이현승, 1992)

포스터를 위해 별도로 촬영한 사진으로 제작된 포스터. 타이틀에 걸맞게 사진, 타이틀 모두 영화의 키 컬러(Key Color)인 블루 톤으로 디자인됐습니다. 이현승 감독이 디자인을 전공해서인지 다른 한국영화에 비해 스태프 크레디트에 각 분야별 디자이너의 이름이 많이 등장합니다. 손기철 사진가의 사진, 영화사 아침 고(故) 정승혜 대표의 디자인, 당시 영화를 기획한 심재명 현(現) 명필름 대표가 카피를 썼습니다.

이정국의 '두 여자 이야기' 포스터(1994)한국영상자료원

두 여자 이야기(이정국, 1994)

90년대 한국영화 포스터는 디자인을 전공한 전문 디자이너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됩니다. <두 여자 이야기> 포스터 또한 어느 한군데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디자인되었습니다. 영화를 대표하는 컬러를 갈색으로 정하고 일관된 톤으로 디자인한, 일종의 ‘컬러 마케팅’을 시도한 포스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성홍의 '손톱' 포스터(1994)한국영상자료원

손톱(김성홍, 1994)

에로틱 스릴러를 표방한 영화답게 심혜진, 진희경의 세미누드 사진을 내세운 포스터는 공개 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컬러가 아닌 흑백으로 촬영된 사진을 사용해서인지 야하다는 느낌보다 고급스럽고 세련되었다는 첫인상이 강합니다. 긴 손톱의 손으로 가슴을 가린 포즈와 ‘가질 수 없다면 파고든다!’라는 문구로 인해 비주얼과 카피가 완벽하게 일치되는 웰메이드 포스터가 되었죠. 손기철 사진가가 촬영했습니다.

배창호의 '젊은 남자' 포스터(1994)한국영상자료원

젊은 남자(배창호, 1994)

90년대 초반, 혜성같이 등장한 신예 이정재의 영화 데뷔작. 상의 탈의를 한 배우 사진은 해외 속옷 광고에서나 보아왔던 터라 우리나라 배우가 이런 모습으로 등장했다는 것 하나로 당시 상당한 화제를 모았습니다. 포스터가 극장에 붙었을 때 도난을 많이 당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 구본창 사진가가 촬영했습니다.

배창호의 '젊은 남자' 서브 포스터(1994)한국영상자료원

<젊은 남자> 서브 포스터

사진을 가위로 오려 붙여서 포스터를 제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컴퓨터 그래픽이 조금씩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의 포스터입니다. 포토샵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효과들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장길수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포스터(1994)한국영상자료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장길수, 1994)

90년대 초반 최진실의 이미지는 ‘밝고 귀여운 배우’였습니다. 그랬기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 그의 변신은 한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최진실의 새로운 모습은 양귀자의 동명 소설 속 주인공이 실재가 돼 나타난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죠. 배우 사진 한 장만으로 관객에게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강제규의 '은행나무 침대' 포스터(1995)한국영상자료원

은행나무 침대(강제규, 1995)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모티브로 한 포스터로 공개 당시 많은 화제가 됐습니다. 90년대 초·중반 대다수의 한국영화 광고를 기획, 제작한 씨네월드에서 디자인했고, 서양화가이자 영화감독인 이종혁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은행나무 침대’라는 타이틀과 어울리도록 나무 질감이 많이 느껴지는 포스터인데 실제 나무껍질, 낙엽 등을 스캔해 컴퓨터 그래픽으로 완성했다고 합니다.

박철수의 '삼공일 삼공이(301 302)' 포스터(1995)한국영상자료원

삼공일 삼공이(301, 302)(박철수, 1995)

독특한 주제의 영화답게 광고 캠페인도 독특하게 진행한 영화. 이 영화는 포스터보다 배우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파격적이고 센세이셔널한 시리즈의 전단 디자인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오이, 복숭아, 인형 등을 이용해 음식과 성(性)에 대한 표현을 시각적인 은유로 잘 표현했죠.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의 백종렬 감독이 디자인했습니다.

이민용의 '개같은 날의 오후' 포스터(1995)한국영상자료원

개같은 날의 오후(이민용, 1995)

배우들의 모습을 마치 액자처럼 테두리에 작게 배치하고 수백 마리의 개들을 중앙에 빼곡하게 채워넣은 이 포스터는 진짜 ‘개 같은 날의 오후’ 같은 인상입니다. 영화 내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제목에 충실한 은유적 표현의 포스터인데, 방에 붙여놓고 싶을 만큼 예쁘기까지 하죠. 신인 감독의 독특한 영화를 이렇게 도전적인 비주얼로 세상에 공개한 마케팅팀과 디자인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장선우의 '꽃잎' 포스터(1996)한국영상자료원

꽃잎(장선우, 1996)

멀리 태극기가 보이고 꽃잎을 머리에 꽂고 슬픈 표정을 한 소녀가 힘 없이 서 있습니다. 마치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촬영한 것 같은 이 사진 한 장이 주는 흡입력은 포스터가 얼마나 큰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당시의 현장 같은 생생한 느낌을 주기 위해 모노톤으로 촬영한 사진과 꽃잎 한 장이 떨어지는 듯한 로고 타이틀 디자인이 희망적인 느낌을 전달합니다. 사진은 오형근 작가의 작품.

장윤현의 '접속' 포스터(1997)한국영상자료원

접속(장윤현, 1997)

자음, 모음이 분리된 신선한 타이포그래피와 오형근 작가의 번지는 듯한 몽환적인 사진으로 PC 통신 세대들의 감성을 잘 표현한 포스터. 그래픽 디자이너 김상만의 영화 포스터 데뷔작으로, <조용한 가족> <섬> <친절한 금자씨> <기생충> 등도 모두 그의 작품입니다. 후에 그는 영화감독이 돼 <걸스카우트> <심야의 FM>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등을 연출했습니다.

김유진의 '약속' 포스터 2종(1998)한국영상자료원

약속(김유진, 1998)

<그랑블루> <흐르는 강물처럼> 같은 외국영화 포스터가 전국의 카페에 걸리며 인테리어 소품으로 인기를 끌던 90년대, 세련된 디자인의 한국영화 포스터들도 팬시상품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윤형문 사진가가 촬영한 <약속> 포스터는 최고 인기 상품 중 하나였습니다. 90년대 후반은 한국영화 포스터가 영화 홍보 매체의 기능은 물론, 갖고 싶은 ‘디자인 작품’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때입니다.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 캐릭터 포스터 2종(1998)한국영상자료원

강원도의 힘(홍상수, 1998)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포스터로 사진, 타이포그래피, 카피, 일러스트레이션, 레이아웃이 세련됐습니다. 강원도 풍경을 스틸과 합성한 모노톤의 사진이 두 주인공의 공허한 감정을 잘 표현해줍니다.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 메인 포스터(1998)한국영상자료원

남녀 주인공 각자의 이야기가 퍼즐처럼 엮인 영화의 구성처럼 포스터 또한 남녀 캐릭터 포스터가 따로 제작되었고, 불안하게 사랑하는 감정이 잘 느껴지는 2인 포스터도 메인 포스터로 사용되었습니다.

장윤현의 '텔미썸띵' 포스터(1999)한국영상자료원

텔미썸딩(장윤현, 1999)

비 내리는 밤, 다리 밑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경찰자들이 서 있고 다리 위로는 가로등과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화려하게 스칩니다. 눅눅한 습도가 온몸을 휩싸는 어느 날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 같네요. 한국영화 포스터에 처음으로 선보인, 유화로 그려진 <텔미썸딩>의 해외용 영문 포스터를 보면 이 같은 감정이 단번에 느껴집니다. 현대미술관에 걸려 있어도 손색없을, 90년대 베스트 한국영화 포스터 중 하나.

제공: 스토리

기획·제작 한국영상자료원
큐레이터 최지웅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 (프로파간다)]
진행 이지윤·송은지
구성편집 박아녜스·고상석
번역 황미요조

참여: 모든 표현 수단
일부 스토리는 독립적인 제3자가 작성한 것으로 아래의 콘텐츠 제공 기관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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