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시아스 콜롬비아(Gracias Colombia)

한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콜롬비아의 6·25 전쟁 참전 이야기를 살펴보세요

전선으로 이동 중인 콜롬비아 병사들(1953)전쟁기념관

콜롬비아의 6·25전쟁 참전

콜롬비아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유엔 회원국 중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나라입니다. 총 3차례에 걸쳐 5,000 여명의 콜롬비아 육군 및 해군 병력이 참전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한국의 바다와 최전방을 수호하였습니다. UN군으로 참전하여 한반도의 평화 수복에 기여한 콜롬비아의 이야기를 살펴보세요. 

캘리포니아에 정박한 알미란테 파디야함과 해군 승조원 전원의 서명(1951-03)전쟁기념관

참전국 중 유일한 중남미 국가, 콜롬비아

콜롬비아는 유엔참전국 중에서 유일한 중남미 국가였습니다. 1951년 5월 콜롬비아 해군의 프리깃함인 알미란테 파디야 함이 한국에 도착하면서 콜롬비아의 참전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현문에서 근무 중인 알미란테 파디야함 사관과 수병들(1951)전쟁기념관

콜롬비아 해군 제1진, 알미란테 파디야함

한국에 첫 발을 디딘 콜롬비아 해군의 제1진은 알미란테 파디야함과 189명의 해군 병력이었습니다. 이들은 진주만에서 합동훈련을 받은 뒤 한국에 도착하여 유엔해군의 일원으로 작전을 수행하였습니다. 

알미란테 브리온함에 승선한 해군 부사관들(1953)전쟁기념관

3차례에 걸친 콜롬비아 해군의 참전

알미란테 파디야함에 이어 콜롬비아 해군은 1952년 4월에 카피탄 토노함을, 1953년 6월에 알미란테 브리온함을 한국으로 보내어 유엔해군의 해상작전을 지원하였습니다. 

알미란테 파디야함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항로를 논의하고 있는 해군장교들(1951)전쟁기념관

콜롬비아 해군의 작전활동

콜롬비아 해군은 1951년 5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서해안의 항로 순찰을 시작으로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동해안과 서해안에서 교대로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알미란테 파디야함이 한국 해역에서 대잠폭뢰를 발사하는 모습(1951)전쟁기념관

콜롬비아 해군 한반도의 해역을 수호하다

유엔 해군의 일원으로 콜롬비아 해군은 한국 해역에서 보급선단 호송, 해안 초계, 함포 지원 사격 등 여러 작전들을 수행하여 바다를 지키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참전을 위해 출항한 군함 위의 콜롬비아 병사들(1953)전쟁기념관

콜롬비아 육군의 참전

콜롬비아는 해군 뿐만이 아니라 육군 병력도 한국에 파병하였습니다. 1951년 5월에 출발한 콜롬비아 육군 병력은 같은 해 6월 부산에 도착하게 됩니다. 

콜롬비아 대대 부대입구에 표식으로 세워 둔 콜롬비아 대대기(1953)전쟁기념관

육군의 파병부대, 콜롬비아 대대

한국에 파병된 콜롬비아 육군 병력은 '콜롬비아 보병대대'로 유엔의 병력 지원 요청에 응하기 위해 1950년 12월에 창설된 부대였습니다. 

작전 수행 전 도열해 있는 콜롬비아대대 A중대 제2소대(1953)전쟁기념관

콜롬비아 대대의 규모

한국에 도착했을 당시 콜롬비아 대대는 1,089명의 병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후 콜롬비아는 전쟁 중 대대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3차례에 걸쳐 병력을 파견하였으며, 총 5,000여 명이 참전하였습니다. 

전선으로 이동 중인 콜롬비아 병사들(1953)전쟁기념관

미군에 배속되어 싸운 콜롬비아 대대

휴전선 획정을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1951년, 참전한 콜롬비아 대대는 유엔군의 주축인 미군에 배속되어 강원도에서 첫 전투를 치루었습니다. 

적의 공격으로 훼손된 진지에서 피신 중인 콜롬비아 병사들(1953)전쟁기념관

한국에서 매서운 겨울을 견디다

콜롬비아 대대는 중공군과의 치열한 전투를 겪었을 뿐만이 아니라, 혹독한 겨울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콜롬비아 대대는 두 번의 혹한을 견뎌 내었습니다.

60mm 박격포를 정비하고 있는 콜롬비아 병사들(1951)원본 출처: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 국사편찬위원회 수집자료

최전선에서의 진지전을 경험하다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콜롬비아 대대는 최전선에서 휴전선 획정을 위한 치열한 진지전에 참여하였습니다. 잦은 전투로 인해 콜롬비아대대는 상황에 따라 재정비에 만전을 기하였습니다. 

M-24 전차 교육을 받고 있는 콜롬비아 병사들(1953)전쟁기념관

공세와 방어에 대비한 훈련

1953년에 이르러 중공군의 공세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자, 콜롬비아 대대는 이에 대비하기 위해 사전 연습 및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근접 방어전을 수행하는 콜롬비아 병사들(1951)원본 출처: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 국사편찬위원회 수집자료

콜롬비아 대대, 중공군의 공세를 방어하다

참전 기간 동안, 콜롬비아 대대는 김화와 연천 등 최전선의 고지대에서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세를 맞서 방어작전을 수행하였습니다. 

대검이 장착된 M1소총을 들고 훈련 중인 콜롬비아 병사들(1951)원본 출처: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 국사편찬위원회 수집자료

일진일퇴의 치열한 진지전

휴전선 획정을 위한 치열한 진지전에서, 콜롬비아 대대는 중공군의 공세를 방어했을 뿐만이 아니라 적 진지에 대한 역습과 정찰전을 활발히 수행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전투를 수행하면서 콜롬비아군에서 163명의 전사자와 448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60명이 실종되고 30명이 포로로 잡히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고사 기관총좌에서 경계 임무 수행 중인 콜롬비아 병사들(1951)원본 출처: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 국사편찬위원회 수집자료

콜롬비아 대대, 최전선의 고지를 지켜내다

콜롬비아 해군이 한국의 바다를 지키는데 기여하였듯이, 콜롬비아 대대는 최전선에서 주요 고지를 지키고 확보하는데 피땀을 흘렸습니다.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콜롬비아 대대는 두 번의 혹한과 치열한 진지전을 견디고 최전선을 수호하였습니다. 

제공: 스토리

기획: 진영기
편집·진행: 정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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