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한국 최초의 해외 의료지원단을 파견하다
스웨덴 정부가 한국으로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최초의 국가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1950년 8월 10일, 스웨덴 정부는 3~6개월마다 의료진을 교대하는 방침하에 초대 병원장 그루트(Carl-Erik Groth) 대령을 포함한 의사, 간호사 등을 한국으로 파견하였습니다.
스웨덴 의료지원단,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스웨덴 정부에서 파견한 의료지원단 중 선발대는 뉴욕을 거쳐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이후 의료진들은 예루살렘, 인도를 거쳐 부산에 도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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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 한국으로의 비행 경유지인 예루살렘에 있는 스웨덴 학교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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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 한국 비행 경유지인 예루살렘에 있는 총탄이 박힌 스웨덴 학교를 방문한 의료지원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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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도시, 인도 캘커타를 경유한 스웨덴 의료지원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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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지 홍콩에서 촬영한 스웨덴 의료지원단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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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지 홍콩에서 촬영한 사진
스웨덴 의료지원단의 의료 활동
서전병원은 개원 당시 학교 건물에 2개의 병동, 16개의 병실, 진찰실, 수술실 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운동장에도 조립식 퀀셋(Quonset) 건물을 세워 간호사 기숙사, 입원실, 식당 등의 병원시설로 활용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전선 후방에 설치되는 야전병원으로 시작하였으나, 인도·노르웨이 야전이동병원이 전선에 배치되면서 서전병원은 후송병원으로 그 기능이 바뀌어 부산에 계속 머물며 의료 활동을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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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전 병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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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전병원 전경과 천막 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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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뷸런스와 응급환자 치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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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뷸런스와 응급환자 치료 모습
스웨덴 의료 지원단의 민간 치료 활동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부상자의 숫자가 줄어들게 된 1951년 6월 이후 스웨덴 의료 지원단은 민간인 치료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부산시민들은 훌륭한 의료장비와 수준 높은 의료기술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의료지원단은 나환자촌을 방문하는 등 인도주의적 의료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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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의료지원단의 나환자촌 의료활동
스웨덴이 바라본 대한민국
의료지원을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스웨덴 의료진들은 그들의 시각으로 부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전쟁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피란민들이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그들의 모습들을 현재에도 그 사진들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왼쪽) 부산 국제시장의 모습, (중앙, 오른쪽)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는 사람들
(왼쪽)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중앙) 장고를 치며 노래하는 여인, (오른쪽) 과일을 파는 아이들
전쟁 이후
전쟁이 끝나고 떠나가는 일부 스웨덴 의료진들을 뒤로 하고 UN소속 의료지원국들은 당시 대한민국의 의료체계가 와해된 수준이라는 것을 통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UN 의료지원국 5개국 중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는 함께 와해된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를 복구하기 위해 환자 진료 및 선진 의학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서울에 종합병원을 건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설립된 병원은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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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되어 정전 후에도 폐허가 된 우리 의료 체계를 다시 세우고, 선진 의학을 도입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해준 스웨덴. 한국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다른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이 이야기에 활용된 자료에 대한 모든 권한은 전쟁기념관에 있습니다.
기획·편집: 손원태
진행: 정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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