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는 화업의 초기부터 대나무를 지속적으로 그려왔으며, 그 양상도 청죽, 주죽, 묵죽, 풍죽, 우죽, 설죽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응노가 고암(顧庵) 이라는 호를 쓰기 이전, 청년시절 해강 김규진 문하에서 그림을 배울 때 썼던 호가 죽사(竹史)였으며 1927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하면서 작가로서 첫 출발을 했던 작품도 ‘청죽(晴竹)’이었을 뿐 아니라 문자추상이나 군상 등을 그릴 때도 평생을 벗 삼아 그리던 소재가 바로 대나무였다. 1971년의 이 작품은 한 그루의 대나무가 아닌 대나무 숲을 그린 것으로, 마치 비바람을 견디고 난 후인 듯 서 있는 방향이 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대나무의 큰 줄기는 휘지 않고 곧으며, 댓잎들은 어지럽게 얽혀 있는 듯이 보이면서도 무성하고 힘차 보인다. 화면 내에 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한 방향성을 부여하는 댓잎들의 형상은, 이후의 군상 연작 화면에서 보이는 동세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