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4대손으로서 왕실 종친이었던 이정은 조선시대 중기의 대표적 화가이다. 청년 시절부터 시문과 그림 솜씨를 인정받았고 특히 대나무 그림으로 당대 문인 사회에서 명성이 높았다. 38세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팔을 다쳤으나, 이후 회복하여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전쟁 이후에 공주에 별서정원을 짓고 그곳에 기거하면서 창작 활동에 몰두하여, 현재 서예, 산수, 사군자 등의 작품이 여러 점 전한다. 한국 묵죽화의 전형을 이루어낸 우리나라 최고의 묵죽화가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작품은 비에 젖어 댓잎이 아래로 향해 있는 대나무 다섯 그루와 바위로 구성되어 있다. 농묵으로 그려진 두 개의 대나무 뒤로 매우 흐린 먹으로 그려진 대나무가 마치 그림자나 짙은 안개에 숨어 있는 듯이 표현되었다. 비에 젖으면 서로 조밀하게 겹쳐지게 되는 댓잎의 특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농담의 차이를 주어 전경과 후경에 배치함으로써 반복과 변화를 꾀한 점, 간략히 마무리한 바위 표현 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