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은 파리에 도착한 직후부터 콜라주 작업에 몰두했고, 파케티 화랑의 전시 제목도 <콜라주 전>이었다. 그는 잡지 조각들을 찢어 색채별로 모아두고 사용하거나,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그리다 버린 한지나 신문지 조각들을 손으로 찢어 뜯어 붙이기 시작하였다. 그의 콜라주 작업이 비정형적이었고 화면의 질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넓게는 그 당시 유럽을 풍미했던 앵포르멜 미술운동의 영향이 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이응노의 콜라주가 191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서양미술의 콜라주와 다른 점은, 대개의 경우 원하는 형태의 종이를 잘라 붙였던 것과 달리 이응노는 종이 그 자체를 붙였다가 떼어 내고 겹겹이 붙인 종이들을 긁어내어 밑에 있는 종이들이 드러나게도 하고, 또 그 위에 먹이나 다른 안료로 채색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마치 물감의 대용품처럼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도 종이 조각들은 거의 원형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어 전체 화면을 위한 조화로운 배색의 요소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