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문자추상과 내용적으로 연관된 판화 작품이며, 흰 배경과 붉은 형상이 강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응노의 판화 작품들 중 군상이나 구체적 형상을 담은 경우를 제외하고 문자추상과 연관된 것들은 대체로 동양의 전각 전통을 연상시킨다. 전각은 한정된 공간 내에 글자를 배치하여 새기는 한자 문화권의 독특한 새김 방식이며, 자형의 조형성이 작은 공간에서 어우러져 독특한 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평가되기도 한다. 시서화각의 동양적 전통에 누구보다 익숙한 이응노는 판화 매체를 다룸에 있어 전각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특히 이 작품은 경면주사(鏡面朱砂)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을 이용하고 있어 더욱 전각을 연상시키는 바가 있으나, 이응노는 문자의 형상을 찍고 아래에 검은 색으로 영문과 한자가 어우러진 사인을 남기고 있어서 이 작품이 판화의 문맥에 위치된다는 것을 오히려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응노 자신의 글씨로 작품의 아래에 쓰여진 바, 1977년 파리의 고려화랑에서 개최되었던 개인전의 포스터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