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은 토지와 노비는 물론 수저 등 가재도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서책 등 지식자산을 분재 대상으로 규정한 예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근곡芹谷 이관징(李觀徵, 1618-1695)과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1664-1732)의 예는 그 좋은 사례가 된다.
이관징은 대대로 벼슬하는 집안에서 태어났고, 자신 또한 형조판서를 지내며 정경의 반열에 올라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풀지 못한 염원이 있었으니, 그것은 학자에 대한 열망이었다. 사실 이관징은 벼슬살이를 하느라 공부할 겨를이 없었고, 네 아들 또한 문장으로 명성을 얻기는 했지만 학자는 아니었다. 학자에 대한 기대는 자연히 손자 대로 넘겨지게 되었다.이관징에게는 10명 남짓한 손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눈여겨 본 것은 작은 손자 이만부였다. 만부는 젊은 나이에 이미 과거를 단념할만큼 학자적 자질과 의욕이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이관징은 숙종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비롯한 각종의 서책을 작은손자인 만부에게 특별히 상속하는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후일 이만부는 18세기 조선의 지식문화를 선도하는 석학으로 성장했으니 이관징의 판단은 적중했다. 이들 조부와 손자 사이의 미담은 지적 자산의 상속과 관련하며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