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서화 삼절(三絶)로 손꼽히며 18세기 조선 화단을 주도했던 표암(豹菴) 강세황의 작품이다. 화폭 말미에 쓰인 발문(跋文)을 통해서 이 그림이 그가 49세였던 1761년 정월 23일 박언회(朴彦晦)라는 지인과 함께 해주 정씨 종가인 정택조의 집 지락와(지락와는 정택조(鄭宅祚, 1702-1771)의 당호이다.)에 모여 경치를 감상하던 차에 시를 짓고 그것을 기념으로 그렸던 작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락와와 그 앞의 작은 연못, 오른쪽으로 이웃한 농가들이 반 조감도식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연못의 왼쪽 위 산자락에는 단종(端宗)의 비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가 묻힌 사릉(思陵)이, 화면 상단에는 수평으로 길게 뻗은 산들이 배치되어 있다. 현재 연못은 메워져 없지만 산의 윤곽이 실제 천마산 줄기 능선과도 닮아서 강세황의 실경산수 작화 태도를 실증하는 자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녹, 황, 청, 갈색의 신선한 담채의 사용과 수묵을 적절하게 구사하여 규칙적이면서도 성긴 미점을 표현하는 등의 강세황의 개성적인 화법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