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림 사건으로 수감되어 있던 안양교도소에서 그린 작품들 가운데 하나로,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 ‘안양교도소에서 가장 춥고 괴롭던 날, 자화상’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자화상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의 얼굴이 구상적으로 형상화되었다기보다는 사의적 추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발묵의 재질적 효과가 매우 자연스럽게 형태를 형성하고 있다. 작품의 형식을 보았을 때 한지에 먹이 스며들면서 번지는 발묵 기법을 이용하고 있으며, 경계선상의 무한한 회색의 영역이 여백과 형태를 구분 짓고 있다. 커다란 검은 형태의 한 가운데에는 흰 여백의 영역이 남아 있는데, 이 역시 발묵 기법으로 먹이 종이에 스며드는 불규칙적인 흔적들이 경계를 대신하고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가운데 한 가닥 빛을 형상화하는 것 같은 이 작품은, 인생의 큰 시련에 봉착해 있었던 고암의 심경을 고요하게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