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희지의 필진도는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가 글씨쓰는 법에 대해서 설명한 글이다. 왕희지의 스승이라 불리우는 위부인(偉夫人)이 지은 『필진도병서(筆陣圖並書)』 라는 글이 있으며, 그 글에 대해 왕희지가 다시 『제필진도후(題筆陣圖後)』를 새긴 것으로, 왕희지 필진도 전문(全文)이 아니라 일부만을 각(刻)한 것이다. 창덕6727_뒷면, 창덕6725_뒷면, 창덕6703_뒷면, 창덕6727_뒷면, 창덕6723_앞면 왼쪽이 각석 전문을 이루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종이는 진陣이고, 붓은 칼 끝이고, 먹은 투구이고, 물과 벼루는 성지(城池)이다. 본령(本領)은 장군(將軍)이요, 심의(心意)는 부장(副將)이다. 결구(結構)는 계획이요, 붓을 휘두르는 것은 길흉(吉凶)이다. 출입(出入)은 호령(號令)이요, 굴절(屈折)은 살육(煞戮)이다. 글씨를 쓰려고 하는 이는 먼저 벼루와 먹을 건조하게 하고, 정신을 집중하고 생각을 고요히 해서 글자의 형태를 미리 상상한다. 크고 작은 글씨가 변화하는 맥락은 연속되는 것이므로 붓을 들기 이전에 뜻이 있어야 하고 그런 연후에 글자를 만든다. 만약 평평하고 곧음이 비슷하다고 하여 글자 모양이 산자(筭子)처럼 된다면 글씨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점과 획을 터득할 뿐이다. 옛날 송익(宋翼)이 항상 이런 글씨를 썼다. 송익은 종요(鍾繇)의 제자인데 종요가 그를 꾸짖었다. 송익은 마침내 3년 동안 스승 종요를 감히 보지 못하였다. 마음을 차분히 하여 공부한 결과 지난 날의 글자를 고쳤는데 획(畫)을 한 번 그을 때는 항상 세 번씩 굴절을 주었으며, 점 하나를 찍을 때도 항상 붓의 중심을 감추어서 글씨를 썼다고 하였다. 나는 또 이사(李斯)와 조희(曺喜) 등의 글씨를 보았다. 또 허하(許下)로 가서 종요와 양곡(梁鵠)의 글씨를 보았으며, 또 낙하(洛下)로 가서 채옹(蔡邕)의 석경서(石經書)를 보고, 또 사촌 형 흡(洽)에게 가서는 장욱(張旭)의 화악비(華嶽碑)를 보았다. 만약 위부인(衛夫人)의 글씨를 배우려고 할 것 같으면 다만 시간을 낭비할 뿐이다. 나 희지(羲之)는 마침내 본래의 스승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