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唐代)의 시인 왕유(王維, 699~759)는 장안(長安) 남쪽의 남전현(藍田縣) 망천(輞川)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친구인 배적(裵迪) 등과 함께 자연을 즐기며 죽리관(竹里館)과 임호정(臨湖亭)을 비롯한 그곳의 뛰어난 경치 20곳을 묘사해 오언절구(五言絶句)의 시로 남겼다고 한다. 이들 시는 《망천집(輞川集)》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왕유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공양을 위해 초당(草堂)을 희사하여 청원사(淸源寺)라는 절을 세웠는데, 이 절의 벽에 망천의 경승(景勝)을 그렸다고 한다.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는 이 망천도의 뛰어남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현존하는 망천도는 석각본(石刻本)을 포함하여 대부분 동일 계통에 근거한 것으로, 《망천집》에 실린 20수의 시와 비교하면 조금씩 차이가 있다. 현재 송대(宋代) 곽충서(郭忠恕)의 망천도를 새긴 석각본이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예로 전한다. 화정박물관 소장 망천도에는 첫 부분에 왕마힐망천도(王摩詰輞川圖)라고 쓴 예서제자(隸書題字)가 있고 그 아래 소장인으로 보이는 인영(印影)이 둘 있으나 그 인문(印文)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