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chibana Museum
TACHIBANA MUSEUM
edited by Nishihara Ippo, illustrated by Koga Tomijirou Nantei의 Ynanagawa Meishou-zue(1844)Tachibana Museum
1738년 겐분 3년 에도 시대 중기
5대 야나가와 번주 다치바나 사다요시에 의해 번주와 그 가족이 생활하는 장소로 야나가와성
내에 있던 저택의 일부가 옮겨져 ‘오하나바타케’가 지어졌습니다.
Unknown의 The Tachibana family's residence from the main gate(1945)Tachibana Museum
1910년 메이지 43년
다치바나 가문 14대 당주 다치바나 도모하루의 거처로, ‘연회장’, ‘서양관’, ‘거실’, ‘가정국’, ‘문지기 대기소’ 등으로 구성된 백작 저택과 ‘쇼토엔’이라 불리는 정원이 만들어졌습니다.
Unknown의 Tachibana Ayako(20th century, Showa period)Tachibana Museum
1950년 쇼와 25년
다치바나 가문 15대 당주 다치바나 아키노리의 외동딸인 아야코와 결혼한 16대 당주 다치바나 가즈오가 자택인 구 백작 저택의 일부를 이용하여 ‘요정료칸 오하나’를 시작했습니다.
Unknown의 Shoto-en garden at presentTachibana Museum
1978년 쇼와 53년 8월 25일
구 백작 저택의 한 구획, ‘연회장’, ‘서양관’, ‘거실’과 정원 ‘쇼토엔’을 합쳐 ‘쇼토엔’이라는 명칭으로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Unknown의 Sketch of Tachibana gardenTachibana Museum
2011년 헤세이 23년 9월 21일
지정 범위에 ‘가정국’, ‘문지기 대기소’, ‘동쪽 정원’이 추가되어 지금의 ‘야나가와 번주 다치바나 저택 오하나’ 전역을 포함한 약 28,600㎡가 모두 명승으로 지정되었고, 명칭도 ‘다치바나 정원’으로 바뀌었습니다.
Nakano Shunsui의 Yanagawa-jo Castle(1914)Tachibana Museum
영지 야나가와와 다치바나 가문
다치바나 가문의 초대 인물은 전국시대에 북부 규슈를 지배하던 오토모의 중신이자 용장으로 유명한 벳키 도세쓰입니다. 외동딸인 긴치요를 정실로 뒤를 이은 사람이 초대 야나가와 번주가 되는 다치바나 무네시게입니다.
전국시대의 야나가와는 가마치, 류조지 등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규슈를 평정했을 때 선봉에서 활약한 무네시게가 그 공으로 지쿠고 13만 섬을 받았습니다. 무네시게는 야나가와에 성을 차렸지만, 세키가하라 전투로 서쪽 군에 가담한 결과 영지를 몰수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20년 후 도쿠가와 장군 가문에서 두터운 신뢰를 받은 무네시게는 다시 야나가와성주로 복귀했습니다. 그 후 메이지 유신을 맞이하는 12대 번주 아키토모까지 에도 시대에 걸쳐 야나가와 번 11만 섬을 다스려 왔습니다.
edited by Nishihara Ippo, illustrated by Koga Tomijirou Nantei의 Ynanagawa Meishou-zue(1844)Tachibana Museum
에도 시대의 오하나바타케 저택
1738년(겐분 3년), 5대 야나가와 번주 다치바나 사다요시는 그때까지 야나가와성 내의 니노마루 저택에 있던 자신의 아이와 첩실, 가정부 등이 생활하는 장소, 이른바 가사 기능을 성의 남서쪽 구석으로 옮겨 ‘오하나바타케(꽃밭)’라 칭했습니다. 이후 야나가와성 바깥 해자로 둘러싸인 오하나바타케는 교대로 에도와 야나가와를 오가는 번주가 영지에서 편히 쉬는 사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Unknown의 Ohana Garden(20th century, Showa period)Tachibana Museum
에도 시대의 동쪽 정원
오하나바타케 저택에는 호소카와 가문의 스이젠지조주엔(구마모토현)이나 시마즈 가문의 센간엔(가고시마현)을 비롯해 현존하는 다이묘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인 큰 연못 주변을 돌며 감상하며 거닐 수 있는 지천 회유식 정원이 만들어졌습니다. 에도 시대에 그려진 정원 그림을 보면, 벚나무나 단풍나무 등의 수목이나 창포 등의 식물이 심겨 있어 사시사철의 변화를 즐길 수 있는 정원이었을 것으로 상상됩니다.
Unknown의 Tachibana Family(20th century, Showa period)Tachibana Museum
백작이 된 다치바나 가문
마지막 번주가 된 아키토모로부터 가독을 물려받은 다치바나 가문 14대 당주 도모하루는 1884년(메이지 17년)의 화족령에 따라 백작이 되었습니다. 도모하루는 1871년(메이지 4년)의 폐번치현(봉토를 폐지하고 현을 설치한 행정개혁)으로 도쿄로 이주했지만, 1889년(메이지 22년)에 생활 거점을 도쿄에서 야나가와로 옮깁니다.
1910년(메이지 43년) 5월, 당시의 부지를 확장해서 만들어진 서양관과 일본관이 양립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백작 저택과 쇼토엔이라 불리는 탁 트인 정원이 완성되었고, 야나가와의 사람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백작 다치바나 가문의 사람들은 정원이 있는 전통적인 일본 가옥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사진을 보면 남성은 주로 양장, 여성은 대부분 일본식 복장으로 지낸 듯합니다.
Unknown의 Great hallTachibana Museum
메이지 시대의 다치바나 백작 저택
메이지 시대 후기의 상류계급 주택은 서양관과 일본관으로 구성된 대규모 건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다치바나 가문은 서양관과 일본관을 평행으로 배치하였고, ‘서양관’에 현관과 응접 기능을 부여하여 ‘연회장’을 응접실로 사용했습니다. ‘서양관’과 ‘연회장’에 적용된 ‘킹 포스트 트러스’ 기법이나 창문 유리, 전기 조명 등 다치바나 백작 저택에는 당시 최신식 근대 기술이 사용되었습니다.
Unknown의 Main entrance hall of the Count Tachibana residence(20th century, Showa period)Tachibana Museum
‘서양관’은 2층짜리 목조 건물로, 현관에서는 화려한 3개의 아치가 손님을 맞이합니다. 실내의 중후한 장식은 백작 저택에 잘 어울리고, 나무 표면은 100년 넘게 닦여와 윤이 납니다.
Unknown의 Japanese-style Grand HallTachibana Museum
‘연회장’은 단층 목조 건물로 남쪽의 쇼토엔과 면하며, 동쪽부터 18조(9평), 18조, 12조(6평)짜리 방이 나란히 있고, 남쪽과 북쪽으로 6척 정도의 다다미 복도가 있습니다. 구 다이묘 가문에 걸맞은 격식을 갖춘 ‘연회장’ 동쪽과 서쪽 두 군데에 바닥, 선반, 부서원이 있고, 디딤돌을 중심으로 쇼토엔 전체를 구석구석 바라볼 수 있는 배치로, 근대 건축 특유의 새롭고 밝은 인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Unknown의 View of Tachibana's residence from Shoto-en garden(1909)Tachibana Museum
메이지 시대의 ‘쇼토엔’
‘연회장’과 ‘거실’과 면한 정원은 ‘쇼토엔’이라 불려 왔습니다. 메이지 시대에 가꿔진 정원은 연못을 중심으로 주위에 많은 곰솔, 정원석, 석등을 배치한 화려한 정원으로, 연못의 바위섬 배치에는 14대 당주 도모하루 백작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연못 물은 수로에서 끌어와 다시 수로로 흘러나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의 명승 다치바나 정원을 방문하면 이 광경이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을 실감하면서
자라난 소나무의 크기에서 세월의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Unknown의 Sho-to Garden(20th century, Showa period)Tachibana Museum
요정 오하나
1950년(쇼와 25년) 다치바나 가문 15대 당주 다치바나 아키노리의 외동딸인 아야코와 결혼한 16대 당주 다치바나 가즈오는 자택인 구 백작 저택의 일부를 이용하여 ‘요정료칸 오하나’를 시작했습니다. 야나가와의 사람들이 친밀감을 담아 부르던 ‘오하나’라는 애칭을 다치바나 가문이 운영하는 회사명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구되는 기능이 변화하면서도 신축 당시부터 모습을 크게 바꾸지 않은 ‘쇼토엔’과 ‘연회장’, ‘서양관’, ‘거실’, ‘가정국’, ‘문지기 대기소’는 문화재가 되었고, 야나가와 관광의 상징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Unknown의 Shoto-en garden at presentTachibana Museum
그리고 지금
시대의 흐름과 함께 명승 다치바나 정원은 번주의 저택에서 백작 저택, 그리고 요정 오하나로 변모해 왔습니다. 그러나 다치바나 가문의 역사적 자산이 이 야나가와 땅에 계속 남아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야나가와에 역사를 새겨 나갈 것입니다.
공익재단법인 다치바나재단 다치바나
가문 사료관
주식회사 오하나
Supported by the Agency for Cultural Affairs, Government of Japan in the fiscal 2019
국가지정명승 ‘다치바나 정원’ 시리즈1 "‘아야코 in 다치바나 백작 저택"
국가지정명승 ‘다치바나 정원’ 시리즈2 "백작의 딸 다치바나 아야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