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부궁전도(江華府宮殿圖)

국립중앙도서관

‘강화부궁전도’란?
‘강화부궁전도(江華府宮殿圖)’는 ‘강화부에 있는 궁전의 그림’이란 뜻으로, 4폭의 그림이 각각 네 번 접혀서 수록되어 있다. 1폭은 행궁도(行宮圖), 2폭은 외규장각도(外奎章閣圖), 3폭은 장녕전도(長寧殿圖), 4폭은 봉선전도(奉先殿圖)․만녕전도(萬寧殿도)이며, 1881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귀중본으로 지정하여 특별 관리하고 있으며, 원본의 보존을 위해 원본과 동일한 색상의 영인본을 제작하여 이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강화부궁전도에 그려진 다섯 곳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의 관청리에 강화부의 옛 관아건물과 함께 있었으며, 현재는 외규장각만 복원되어 있다. 원본에서 접힌 부분의 훼손 가능성이 높아 영인본을 대상으로 촬영하였다.
강화부에 궁전을 만든 이유 1
강화도 부근의 서해 바다는 밀물 때의 최고 해수면과 썰물 때의 최저 해수면의 높이 차이가 약 9m에 이를 정도로 크다. 이 때문에 강화도와 김포군 사이, 강화도와 북한 개풍군 사이의 좁은 물목에 있는 바닷물은 밀물 때는 한강과 임진강의 내륙 쪽으로, 썰물 때는 서해의 바다 쪽으로 6시간마다 방향을 바꾸어 가면서 빠르고 거칠게 흐른다. 또한 썰물 때는 강화도 주변에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푹푹 빠지는 넓은 갯벌이 펼쳐진다. 이와 같은 천혜의 자연조건 때문에 대규모의 군대가 배를 타고 좁은 물목을 건너 강화도에 상륙하기가 쉽지 않았고, 강화도는 육지 방향에서 쳐들어온 대규모의 외적에 대한 장기항전의 요새 역할을 하게 되었다. 유라시아대륙에 걸쳐 대 제국을 건설한 몽골이 1231년에 1차로 고려에 침략해 들어왔고, 고려 정부는 다음 해인 1232년에 개성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 장기항전을 시작하였다. 이후 2차부터 7차까지 여섯 번에 걸친 몽골의 대규모 침략에도 강화도는 함락되지 않았다. 조선, 일본, 명나라가 참가한 국제전이었던 임진왜란(1592~1598)을 거치면서 급성장한 여진족이 1616년에 후금(後金)이란 나라를 세우자 조선은 후금의 대규모 침략에 맞서기 위한 장기항전의 거점으로 강화도의 군사시설을 재정비하였다.
1627년에 3만의 후금 군대가 침략해 온 정묘호란 때 인조 임금은 강화도로 피난하여 장기항전을 지휘하였다. 국호를 바꾼 청나라가 1636년에 12만의 대군으로 다시 침략해 온 병자호란 때도 인조 임금은 강화도로 피난하려 했지만 청나라의 군대가 너무 빨리 서울 부근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장기항전을 지휘하였다. 비록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청나라 군대에게 함락되었지만 효종(孝宗, 재위: 1649~1659) 임금 때부터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청나라와의 대규모 전쟁에 대비하여 천혜의 요새 강화도의 군사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재정비를 시행하였다. 이후 강화도는 청나라가 또다시 대규모 침략을 감행해 왔을 경우 임금이 피난하며 장기항전을 지휘할 제일의 요새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임금이 거쳐할 임시 궁궐, 죽은 임금들의 영혼을 임시로 모시며 제사하는 궁전, 영구보존이 필요한 책을 보관하는 도서관 등의 각종 시설이 강화도에 만들어지게 되었다.
행궁(行宮)
임금이 피난, 왕릉이나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한 온천 행차 등의 이유로 서울을 떠났을 때 잠시 머무는 궁궐을 가리킨다. 1866년 프랑스군이 불태운 후 현재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강화부의 행궁은 청나라와의 전쟁이 발생했을 때 임금이 강화도에 피난하며 장기항전을 지휘할 임시 궁궐이었으며, 이밖에 피난을 위한 행궁은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에 있었다. 왕릉과 온천 행차 때 머물기 위한 행궁으로는 각각 경기도 수원의 화성행궁과 충청도 온양의 온양행궁이 있었다.

행궁(行宮)

행궁(行宮)

외규장각(外奎章閣)
‘서울 바깥에 있는 규장각’이란 뜻으로 창덕궁에 있던 국립왕실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이었다. 청나라의 대규모 침략이 발생해도 왕실 관련 주요 도서가 유실되지 않도록 보존하기 위해 1782년에 만들었으며, 최고 1,009종 5,067책을 보존하였다. 1866년에 프랑스군이 침략하여 외규장각을 불태웠으며, 2003년에서야 복원되었다. 프랑스군이 불태우지 않고 약탈해간 297책은 2011년에 우리나라에 반환되었다.

외규장각(外奎章閣)

외규장각(外奎章閣)

장녕전(長寧殿)
조선의 19대 임금 숙종(肅宗, 재위: 1674~1720)의 초상화를 모셔두기 위해 세운 궁전으로, 1776년에는 만녕전(萬寧殿)에 있던 21대 임금 영조(英祖, 재위: 1724~1776)의 초상화도 옮겨왔다. 1866년 프랑스군이 불태운 후 현재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장녕전(長寧殿)

장녕전(長寧殿)

봉선전(奉先殿)과 만녕전(萬寧殿)
봉선전은 조선의 7대 임금인 세조(世祖, 재위: 1455~1468)의 초상화를, 만녕전은 21대 임금인 영조(英祖, 재위: 1724~1776)의 초상화를 모시기 위해 지은 궁전이다. 1776년 영조의 유언에 따라 초상화를 장녕전으로 옮긴 후 만녕전은 빈 궁전으로 남게 되었다. 1866년 프랑스군이 불태운 후 현재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봉선전(奉先殿)과 만녕전(萬寧殿)

봉선전(奉先殿)과 만녕전(萬寧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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