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5가지

이융세의 이응노이응노미술관

이응노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으로, 그의 작품 활동에 대한 열정과 전념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하며 80세가 넘을 때 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으며,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작가였습니다. 

이응노의 대나무(1978)이응노미술관

1. 이응노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한 작가였습니다.

이응노는 주로 근현대 예술로 분류되는 '추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실 사군자 그림을 그리며 서화가로 작가로서 커리어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특히 대나무 그림에 탁월해 죽사 '죽사'(竹史) 라고도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후 서양의 현대미술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고유한 화풍을 개척하는 데 근간이 되었습니다.

이응노의 구성(1972)이응노미술관

2. 그는 서로 다른 장르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 들었습니다. 

서예, 수묵화, 콜라주, 조각, 판화, 타피스트리, 회화 등 하나의 장르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 들었습니다. 늘 새로움을 모색하고 예술적 실험을 계속했던 작가였던 그는  '다양한 장르의 마법사', 장르의 외연을 확장한 '다원적 예술가'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이응노의 구성(1980)이응노미술관

3. 세상 모든 것이 이응노에게는 창작의 재료였습니다.

한지, 천, 솜, 신문지, 세라믹 도기, 썩은 나무, 판재, 돌 등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은,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작업의 재료로 활용한 작가였습니다. 구두굽에도 그림을 그렸고 옷장과 테이블을 활용해서도 조각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응노의 군상(1986)이응노미술관

4. 이응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를 상징하는, 대부분의 대표작들은 그가 유럽으로 건너간 1958년, 그러니까 54세 이후에 제작된 작품들입니다.  '문자 추상' 시리즈는 50 또는 60대에  '군상' 시리즈는 작가의 70에서 80대에 탄생했죠.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사건(1967)이응노미술관

5. 이응노에게 예술은 곧 삶이었습니다.

이응노는 열정이 가득한 예술가였습니다. 10대 때 처음 그리기를 배운 이후로 타계 직전까지 평생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작품 활동에 매진했습니다. 심지어 1967년 정치적 사건에 연류 되어 2년 반 동안 억울한 옥고를 치루면서도 작업을 놓지 않았습니다. 밥풀, 간장 등 감옥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재료 삼아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쳤고 수많은 옥중화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런 이응노에 감명을 받아 교도관들이 종이를 제공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들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1972년 파리에서 개인전 준비중(1972)이응노미술관

이응노는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고 노력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삶을 개척한 화가였습니다.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나 10, 20대때는 표구점의 점원으로 또는 간판업에 종사하며 작품과 생계를 영위해 가며 조선미전에 계속 도전했고, 30대때 일본으로 넘어가서는 신문 배달을 하며 작업을 이어 나가기도 했습니다. 60, 70대에는 정치적 사건에 연류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작업을 끝까지 놓지 않고 이를 예술적으로 승화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렇듯 삶의 모든 과정들이 순탄지만은 않았지만 이응노는 타계 직전까지 도전하고 이겨나감을 멈추지 않았던 한 사람이자 예술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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