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종의 책가도 병풍

조선후기 화원화가가 그린 책가도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여다 봅니다.

장한종의 책거리 병풍 冊架圖 屛風(조선18세기말~19세기초)경기도박물관

책가도란?

‘책가도’ 혹은 ‘책거리’라 칭해지는 그림은 책은 물론 각종 골동품이나 문방구, 화훼 등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책가도는 조선 후기에 궁중이나 상류계층에서 크게 유행하여 제작되었다. 현재까지 전하는 책가도를 살펴보면 대부분 책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각종 진귀한 기물들을 곁들여 배치하는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실제 현존하는 유물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책가도의 특징상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각종 기물들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책가도는 조선 후기의 사회적 양상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 역할을 한다.

책가도의 출현 배경

조선시대에 책가도는 문헌 기록에 의하면 정조대(1776-1800)에 궁중화원들에 의해 활발히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문을 중시 여겨 책을 가까이 했던 정조의 취향과 맞물려 제작되었던 책거리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책가’와 ‘책거리’라는 단어는 정조대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자비대령화원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비대령화원제는 정조 7년(1783)에 정비된 서화 관련 정책으로 소수 정예의 화원만을 국왕 직속의 궁정화원으로 특별관리하여 운영하는 제도를 말한다. 자비대령화원제는 화원들의 실력을 점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시험을 실시했는데, 그 중 책가도 분야도 포함된다. 정조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책가도 그림은 현재 전하는 유물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정조가 책거리의 의미를 ‘비록 책을 읽을 수 없더라도 서실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라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책이 가득 꽂혀있는 서재가 연상되는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책 이외에도 각종 화려한 기물들이 함께 그려지는 19세기 책가도와는 다른 형식이다. 19세기 책가도는 동시기 청나라에서 크게 유행하였던 ‘다보격’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대의 다보격은 다양한 구조로 제작된 상자에 기물을 소장하는 형태와 찬장에 기물을 진열하여 완상하는 2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청대의 다보격 문화는 조선으로 유입되었고, 외국 문물에 개방적인 자세를 취했던 정조나 북학의 분위기로 인해 조선 사회에 빠르게 흡수되었다. 이런 현상은 곧 왕실이나 귀족들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되어 책가도의 등장이나 중국 유물들을 사들여 수집하는 열기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는 정조대에 등장했던 서재를 연상시키는 책가도보다 각종 골동품과 화려한 도자기들이 강조된 책가도로 이행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으로 판단된다.

장한종의 책가도

장한종의 책가도는 현존하는 책가도 중 가장 이른 사례로 꼽히는 작품이다. ‘쌍희(囍)자’ 문양을 새긴 휘장에 둘러싸인 독특한 구성을 보인다. 노란 휘장을 걷어 올리면서 책가의 위용을 드러내 보이게 하는 극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걷어 올려진 노란 휘장 안으로 모두 8칸에 각각 4~5단의 층을 이루는 책꽂이가 있고, 그 위에 책, 중국산 도자기와 옥기, 청동기 유물, 문방구, 과일, 꽃 등이 배치되어 있다. 책과 함께 진열된 장식품은 당시 청나라에서 수입한 다채색의 분채 자기나 문방구류가 대부분이다. 서양회화의 영향을 받아 유행한 선투시도법의 공간에 음영법까지 표현되어 중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유소에 달린 구슬 장식에는 하이라이트까지 표현하여 서양화법에 대한 장한종의 이해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책가의 칸막이와 휘장에도 곳곳에 음영으로 입체감을 내었다.

장한종인張漢宗印 도장

왼쪽 제1폭 아래 부분 휘장과 칸막이 틈새로 보이는 인장함의 도장에 ‘장한종인張漢宗印’이라 그려 넣어 작가를 밝혔다. 책가도에 도장을 숨기는 사례는 화원 이형록(1808~1883 이후)의 예가 알려져 왔으나 이보다 앞서 장한종에게서 이 방법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청동기

상, 주 시기의 잔을 본떠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유물이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청동기는 중국 청대 다보격의 구성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기물 중 하나이다.



그림의 것은 구연부가 밖으로 벌어진 단색유 완이다. 아래의 것은 옆에 있는 도장의 문양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도자기보다는 마노 또는 옥 등의 재질로 제작된 완일 가능성이 높다. 특이한 사항은 그림처럼 구연부가 크게 밖으로 외반된 기형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아래에서 올려다본 착시효과를 위해 과장하여 그린 것으로 보인다.

칠기합

방가요매병

방가요 자기들은 청대에 크게 유행한 복고문화에 편승하여 활발히 제작되었다. 그림의 방가요매병은 구연부가 잘린 형태인데 위에서 올려다본 시점 때문에 구연부가 생략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정

곧은 다리가 특징인데, 그림처럼 길게 뻗은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세장한 몸체 역시 실제 유물에서 확인하기는 어렵다.

장경병

목이 매우 가는 대나무무늬 장경병이다. 문양은 조선 후기의 청화백자와 비슷하나 청대에도 사군자를 소재로 한 병들이 제작되었으므로 이를 표현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국화반

청나라 옹정 시대에 유행한 기형이다.

남유완

안쪽은 흰색, 밖은 남색으로 시유하여 청대만의 특징을 보인다. 위에 놓인 석류는 실제 과일인지 도자기로 제작된 것인지 그림에서는 판단되지 않는다. 건륭시기에는 감상용으로 그릇과 과일, 동물 등을 모두 도자기로 제작한 사례가 있어 그림의 석류 역시 도자기로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새우, 연꽃 그림

장한종은 물고기와 게, 조게, 새우, 물풀 등 물 속의 생물과 풍경을 그린 어해도로 유명했던 화원이다. 그는 젊었을 때 숭어, 잉어, 게, 자라 등을 사서, 그 비늘과 등껍질을 자세히 관찰하고 본떠서 그렸다고 한다. 장한종은 화면 중심부에 자신의 장기인 새우 2마리와 연꽃(4, 5폭 중앙)을 그려 넣었다. 어해도 부분을 중심으로 하여 칸막이와 단을 대칭형으로 구성하였고, 서가의 천판과 밑판, 칸막이의 묘사에서 각각의 소실점을 형성하고 있는데, 각각의 중심점은 대체로 어해도 상단부의 수평선 상에 걸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투시법과 각각의 기물의 묘사는 이형록의 책가도(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에서도 볼 수 있다.



책가도에는 책을 감싸는 ‘롱’도 많이 등장한다. 대부분이 실제 롱이겠지만 일부는 분채로 장식한 도자기일 가능성도 높다. 이 롱의 경우 책가도 상에 묘사되는 어느 롱보다도 화려하게 묘사되어 분채로 제작된 장식성 롱일 가능성이 높다.

의흥요 자사호

책가도에서 많이 등장하는 주전자이다. 의흥요의 자사호는 명말청초 때 중국의 찻잎과 함께 유럽으로 수출되어 큰 인기를 얻었고 강희 연간(1662~1722)부터는 궁중에서 사용되는 공식적인 다구였다.

수선화가 담긴 기물

접시의 경우 연잎 모양에 뒷면에는 연꽃의 잎맥을 새겨 넣었다. 색으로 보아 도자기로 제작된 청유계열의 분채자기로 추정된다.

잉어 장식품

나무로 만든 반탁 위에 가로로 올려놓은 잉어가 놓여 있다. 잉어는 옥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옥으로 동물을 형상화하는 것은 남송 시기부터 활발히 제작되었다. 잉어는 동양, 특히 중국에서 길상의 의미를 지닌 대표적 동물인데, 중국어에서 잉어의 발음이 ‘이익’이라는 단어의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두껍닫이 문

책가의 맨 아랫단은 오동나무를 태워 무늬를 낸 것으로 보이는 두껍닫이 문으로, 맨 오른쪽 문을 열고 그 안에도 책이 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장한종 특유의 익살을 보인다.

제공: 스토리

총괄│김준권
기획│유지인, 심경보
지원│경기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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